완전 봉쇄됐던 외화자금줄 처음 열어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IMF, 실패한 보초병의 일기 54] 우정은 어려운 때 빛난다고 한다. 진정한 벗을 알아보는 건 고난에 빠졌을 때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가 간에는 사람과 같은 우정은 없다. 각자의 국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때 나타난 구원의 손길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반기로 전 파인아시아자산운용 대표는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직전 산업은행의 초대 금융공학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그해 2월부터 머니마켓 라인의 해외 단기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은행원들이 매일 자정까지 근무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외화가 바닥나 11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IMF 위기’가 발생한 후 그는 외환영업실장으로 옮겨 있었다. 부부장에서 부장급으로 승진한 것이지만, 한국 금융공학의 선구자인 그의 주특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사였다. 외환영업실은 기업들의 무역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로, 창구를 통해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부서다. 금융공학과 같은 첨단 분야를 이론적으로 파고드는 일이 아니라, 통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다.

하지만,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이 또한 그가 일을 찾아간 결과가 됐다. 어차피 외화와 관련된 모든 국가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다. 그가 금융공학팀이나 외화자금실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의 다급한 외화 사정의 숨통을 틔어줘야 하는 외환영업실이 가장 할 일이 많은 곳이 됐다.

위기 발생 직후 IMF는 한국에 구조조정차관 10억 달러를 지원했다. 이 가운데 산업은행이 5억 달러를 받아 시중은행들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은행들에 이 돈을 나눠주면 이들 은행은 자기 고객기업들의 무역금융을 지원했다.

필요한 자금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반 전 대표는 정말 알뜰하게 자금을 배분했고 처음에는 수수료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금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모두 합쳐 12개뿐이지만, 당시에는 30개가 넘었다. 이 많은 은행들이 사라진 건 대부분 이 때 위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은행은 회복되기 어려운 신용도가 역력했다. 반 전 대표는 “시중은행(지방은행 제외) 중에는 'ㄷ은행'들이 참 많았는데 이 은행들에는 자금을 배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은행 가운데 'ㄷ은행'은 한 곳도 없다.

시중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은행 역시 자체적인 외화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됐다. IMF 지원 자금 5억 달러를 아끼고 또 아껴서 하루하루 근근이 지내는 날들이 지속됐다.

이 위기가 오기 전 산업은행에는 먼저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찾아오는 외국은행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IMF 위기가 발생한 후에는 이쪽에서 찾아가도 돈을 주지 않을 사람들이니 자기들이 먼저 찾아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익은 외국인 노신사가 찾아왔다. 예전 먼저 돈을 주겠다고 오던 외국은행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소속으로 서울에 상주하면서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로 거래를 하는 은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매번 헛걸음을 했었다. 산업은행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매번 찾아오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그의 방문은 전혀 의미가 달랐다. 이번에도 그는 예전처럼 자신들의 자금을 쓰라는 제의를 하러 온 것이었다.

IMF 위기가 발생한 후, 산업은행이 처음으로 받은 외자제의였다. 정말로 극심한 가뭄 속에 뜻밖의 빗줄기를 그가 몰고 온 것이었다. 규모는 1000만 달러, 2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 한 푼마저 막혀있던 자금줄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대단한 것이었다.

산업은행의 주거래은행이었던 미국계 은행들은 여전히 빗장을 열지 않고 있을 때였다. 예전에는 그냥 오가는 사람으로 보였던 캐나다 노은행원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구원의 손길을 처음 건네 왔다.

RBC에 이어 뱅크오브몬트리얼이 두 번째로 산업은행에 무역금융을 제공했다.

캐나다의 두 군데 은행이 꽉 막혔던 외화자금줄을 열어주기 시작하자, 드디어 산업은행의 외화영업 기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이어 독일계 은행들이 자금지원을 개시했다.

물론 이들 은행이 한국에 대해 자선사업을 한 것이 절대 아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다른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영업을 정지한 상황을 자신들의 영업확대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그래도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일선에 서 있던 반 전 대표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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