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28)...드롱기와 '예술 주입'의 마케팅 효과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이삼십 대에는 국영수로 살고, 사오십 대 이후는 예체능으로 산다.”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다. 국어 영어 수학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해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20-30대까지의 삶이었다면, 모두가 비슷해지는 40대 이후부터는 국영수 실력으로 얻은 것들이 무의미하고 몸 건강 마음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말이었다.

예술에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먹고 살만 해지자 백화점 문화센터나 대학의 평생 교육원에 등록해 예술 강좌를 듣는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몸만들기에 열중하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많다. 예체능으로 살아가려는 중년 군상들의 풍경이다.

기업에서도 예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세태에 뒤질까 염려해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문화예술 경영을 불쑥 천명하는 경영자들도 많다. 예술을 광고에 주입한 사례를 통해 문화예술 경영의 기본 전제를 톺아보자.

▲ 드롱기의 광고 '엠마오의 저녁식사' 편 (1994) /사진=김병희 교수
▲ 카라바조의 유화 <엠마오의 저녁식사> 원작 (1601) /사진=김병희 교수

드롱기의 커피머신 광고 ‘엠마오의 저녁식사’ 편(1994)을 보자. 1902년에 가내 수공업으로 시작한 드롱기(De’Longhi)는 세계적인 명품 가전으로 자리잡은 이탈리아 브랜드이다. 광고에는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성화(聖畫)를 배경으로 첨단 커피머신과 커피 잔 두 개가 놓여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림이다. 전체의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면에 제품을 소개하는 카피를 배치했다. 카피보다 그림이 눈에 띄는 구도. 쳐다보는 순간 성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광고임을 알 수 있다. 아, 카라바조의 그림 <엠마오의 저녁식사(The Supper at Emmaus)>(1601)의 아우라가 떠오른다. 예술의 이미지가 광고에 주입되는 순간이다.
 
두루 알다시피 <엠마오의 저녁식사>(캔버스에 유채, 195×139cm)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걸려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의 여인숙에서 제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여느 성화에서와는 달리 수염도 없고 통통하게 그려진 예수님의 얼굴이 흥미롭다. 제자 두 명은 앉아있고 여인숙 주인은 서서 시중드는데, 부활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생생하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다. 빛의 명암이 대조되면서 극적인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초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카라바조(M.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이탈리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39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이다. 당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를 능가하겠다며 그의 작품을 폄하했던 광기어린 인물이었지만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근대 사실화의 길을 개척했다.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에 찔린 상처가 있는지 손을 넣어보는 《의심하는 토마》(1601-1602)를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드롱기는 이전에도 광고를 했지만 브랜드에 명품 이미지를 넣자는 광고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동안 광고에 활용되지 않았던 카라바조의 명화들을 광고 메시지로 ‘주입(infusion)’했다. 마치 환자에게 수액을 주입하듯이 말이다. 카라바조의 명화들은 드롱기의 커피머신, 전기주전자, 토스터, 오븐, 주방가전, 전기오븐, 계절가전, 난방기기, 세라믹 히터의 광고에 두루 주입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LG가 마티스, 클림트, 고흐, 고갱의 명화를 활용해 “당신의 생활 속에 LG가 많아진다는 것은 생활이 예술이 된다는 것”(2007)이라는 브랜드 캠페인을 전개했듯이 말이다. 예술작품을 브랜드 광고에 주입한 시리즈 캠페인 덕분에, 드롱기는 세계적인 명품 가전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광고하기 전에 비해 브랜드 선호도가 22%나 올라갔고, 판매율도 8.2% 신장되었다.
 
이처럼 예술작품을 활용하는 마케팅 활동을 보통 아트 마케팅(art marketing)이라고 하는데, 전문적인 학술 용어인 ‘예술 주입(art infusion)’이나 원어 그대로인 아트 인퓨전이라고 불러야 타당하다. 자주 쓰이는 아트 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은 예술 주입의 변형된 형태다. 예술 주입이란 제품이나 브랜드에 예술적 요소를 추가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조지아대학교의 박사과정생 헨리크 핵트베트(Henrik Hagtvedt)가 바네사 패트릭(Vanessa M. Patrick) 교수와 함께 예술작품(명화)이 더해지면 제품의 고급감에 대한 지각을 높인다는 ‘예술 주입’ 논문을 발표한 때가 2008년이었다. 이전에 화가였던 핵트베트는 제품의 패키지에 예술작품(art) 이미지를 더하면 비예술작품(non-art) 이미지에 비해 제품의 고급감과 차별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실험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665) /사진=김병희 교수
▲ 영화에서의 스칼렛 요한슨 (2004) /사진=김병희 교수

연구자들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의 이미지를 제품에 인쇄했을 경우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4)에 출연한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를 인쇄했을 경우를 비교했다. 이미지의 고급감은 모두 높았지만, 고급감이 제품에 전이되는 정도와 제품 구매의향은 스칼렛 요한슨의 사진에 비해 베르메르의 그림이 인쇄된 제품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각각의 고급 이미지는 유사했지만 제품과 결합되었을 때의 고급감과 구매의향은 예술작품 이미지 쪽이 훨씬 높게 나타나 학계에 ‘예술 주입’의 가치와 가능성을 환기했고, 헨리크 핵트베트는 스타 연구자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에서 예술 주입을 시도하고 있다. 루벤스, 르누아르,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마그리트, 앵그르, 클림트, 고흐, 고갱, 밀레, 고야 등의 그림을 활용해 브랜드 선호도를 높이고 매출액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브랜드에 예술을 주입하고자 할 때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를 얻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경영자들이 예술 주입을 시도하면 박수쳐야겠지만 대개 1회성 시도로 끝나고 있어 안타깝다. 예술가의 걸작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듯이 브랜드에 대한 예술 주입의 효과도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경영자들은 또한 예술 주입 활동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예술경영 활동에 능한 전문 인력을 부단히 양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년의 군상들도 생활에 예술을 꾸준히 주입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예체능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겉멋으로 말고, 일상에서 밥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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