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기자회견 "완화 정도 줄여 나갈 여건 됐다" 말은 하는데...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금융완화의 정도를 줄여나갈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는 한국이 양적완화를 하고 있어서 매월 채권을 사들이고 있는데, 규모를 줄이겠다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발언 같다.

그러나 한은은 양적완화를 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적 양적완화’라고 처음에 잘못 알려진 국책은행 자본 확충 펀드를 만들기는 했다. 발권력을 동원한 점에서는 같지만 ‘한국적 양적완화’는 10조원 한도만 설정했지 그 후 이렇다하게 뭘 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이주열 총재가 2014년 4월 취임할 때, 그의 직무 부적절을 지적하는 의견은 거의 없었다. 난데없이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 인사가 그와 경합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 총재의 당위성을 더욱 높여주기 위한 들러리 정도에 그쳤다.

김중수 전 총재 시절의 한국은행 운영방침에 대해 한은 직원들의 불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한은 출신 인사인 그가 후임 총재가 됐다. 김 전 총재의 방침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몇몇 고위인사가 물러나기도 했다.

이주열 총재의 한국은행은 김 전 총재 시절의 조직 관리를 바로 잡겠다면서 한은 직원들의 호평은 받아냈지만, 김중수 전 총재의 중요한 덕목 하나까지 완전히 저버리고 말았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이다.

김 전 총재는 부임당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친분 있는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통화정책에 관한한 거의 외로운 투쟁을 할 정도로 독립성을 지켰다. ‘금리 정상화’라는 목표로 2010년 취임 당시 2.00%였던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나 인상했다. 한은 총재 4년 임기 중 5번 금리를 올린 사례는 1997년의 외환위기가 수습된 2000년 이후 김 전 총재뿐이다.

이 때문에 김 전 총재는 물러나는 날까지 기획재정부 뿐만 아니라 청와대,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 수뇌부와 여러 차례 논란을 벌였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 토목공사와 자원외교 등을 과시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성장정책을 밀어붙였을 때 김중수 총재마저 부양적 통화정책으로 호응했었다면 한국 경제는 지금쯤 도처에서 부실 정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3% 성장커녕 플러스 성장 자체가 위협받았을 수 있는 일이다.

이주열 총재는 이 점에 있어서까지 김 전 총재와 전혀 다른 한국은행을 만들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는 통화정책을 했다. 김 전 총재로부터 물려받은 2.50%의 기준금리는 2016년 6월까지 1.25%로 절반을 낮췄다. 6월 이후는 금리를 낮춘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권력 동원 요구까지 받아들여 10조원의 국책은행 자본 확충 펀드를 밀어붙였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자본 확충 펀드를 통과시킨 직후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에 휘말려 탄핵, 파면 당하지 않고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었다면 19일 이주열 총재는 금통위에서 어떤 발언을 했을까.

시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지 10개월 만에, 파면당한 지는 7개월 만에 한은에서 본격적으로 통화정책 전환의 신호가 나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한국은행의 공식 성명서인 통화정책방향은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간다”고 토씨하나 안 바꾸고 있다.

일부 금통위원의 소수의견이 있다고 하나 소수의견일 뿐이고, 한은 총재 기자회견 발언은 그냥 한마디일 뿐이다. 총재에 따라서는 기자회견 때 한마디가 곧 통화정책방향의 연장선이고 단어하나하나가 경제지표인 총재도 있었다. 지금 총재가 취임 후 2016년 7월까지 27개월 동안 보여준 정책 행보로는 거리가 먼 얘기다. 앞으로 금통위 회의를 세 번 더 하고 나면 그의 임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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