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 "30년 전과 유사한 시장 환경 일부 만들어지고 있어"

[초이스경제 김완묵 기자] 9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개장 초 다우지수는 30년 전 블랙 먼데이를 연상하는 듯 100포인트가량 떨어지며 출발했다. 이내 장 막판에 상승으로 마감하며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또 다른 블랙 먼데이급 주가 폭락 리스크가 몰아닥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영국의 저명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자 기사에서 “30년이 지난 지금, 시장은 다르긴 하지만 높은 밸류에이션에서부터 대량 매도세를 가속화할 수 있는 트레이딩 전략들까지 비슷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 당시부터 미국 월가에서 일하고 있는 아트 캐신은 “5~6일 연속으로 시장이 랠리를 이어간 후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19일)의 대량 매도가 인정사정 없이 폭락을 가져왔던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를 생생하게 기억토록 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미국 증시는 하루 만에 20% 이상 폭락하며 일간 사상 최대의 폭락을 기록해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그는 “불행하게도 오늘날과 일부 비슷한 점들이 있다. 이것이 나에게 올해 우리가 봤던 것을 조금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는 현재 넘쳐나는 저리 자금에 힘입어 8년 넘게 거의 끊임없이 강세장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좋지 않은 또 다른 서프라이즈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트 캐신은 “사람들은 그저 조정 시 저가 매수를 계속하고 있고, 자금이 잇따라 유입되고 있다”며 “두 시대의 시장이 비슷하지는 않지만 조정 시 매수 심리는 올해 월가에서 여느 때보다도 더 강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가를 연이어 경신한 이후로 밸류에이션이 높아졌다는 점도 당시와 공통점을 이룬다. 게다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트레이딩 전략들이 마치 1987년과 같이 되레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한편, 규제 당국은 1987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리스크를 적절하게 감시하지 못할 수 있다.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로버트 실러는 자신이 만든 CAPE(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가 현재 2000년에 터졌던 닷컴버블과 1929년의 대공황 이전에 기록했던 최고점만이 더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블랙 먼데이는 그저 밸류에이션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블랙 먼데이는 1929년이나 2000년의 주가 폭락과는 다르게 증시가 일년도 안 돼서 회복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블랙 먼데이를 극단적인 기술적 사고로 보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즉 대량 매도시에 투자자의 포트폴리오가 입게 될 피해를 제한하기 위한 노력으로 선물 매도를 활용했던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 대형 사고를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변동성 통제(Volatility Control)’라고 불리는 리스크 관리 도구가 주로 쓰이고 있는 데, 이론상으로 포트폴리오 보험이 유발했던 순환 고리처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이치은행과 JP모건에 따르면 일종의 ‘변동성 통제’ 메커니즘이 심어진 펀드의 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특히 ‘변동성 매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이 있다는 것이 입증된 이후 ETF들을 통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트폴리오 보험과 변동성 통제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변동성 매도는 시장의 혼란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변동성 급증이 지수 선물을 매도함으로써 스스로를 헤지해야 할 경우 시장을 악화시키고, 또다시 변동성이 높아지게 하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퀀트 헤지펀드인 윈톤캐피탈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하딩 사장은 “자동적으로 주가 하락 시 매도를 하는 전략들이 사용되는 것을 볼 때마다 포트폴리오 보험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오늘날 시장에서 1987년의 교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믿음에 매수를 하고, 경험에 매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포트폴리오 보험이 “땅 밑으로 사라졌다”고 걱정하고 있다. 은행과 헤지펀드들은 시장에 포트폴리오 보험 상품들을 판매하는 데 발을 들여 놓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걱정되는 부분은 이러한 은행들이 모두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헤지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전체 헤지 포지션에 대한 통계가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규제 당국은 각 은행들이 시장에 집단으로 미칠 영향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른 리스크 요소는 시장의 구조와 관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의 시장은 더욱 정교하고 자동화돼 있을지 모르지만,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주된 요소들이 대체로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다. 새로운 범주의 증권들 중 특히나 현재 4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주무르고 있는 ETF가 트레이딩에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위기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특히 덜 유동적인 증권에 연계돼 있는 ETF에 대한 극심한 매도세가 시장의 손실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늘날과 같이 투자 기법이 고도화된 시장에서도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블랙 먼데이가 얼마든지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은 철저한 대비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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