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29)...드비어스 광고가 주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평생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네!” “네.”
  결혼식장에서 흔히 목도하는 장면이다.   
 
  “우리 모두 평생직장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어떤 회사의 창립 기념일 축사에서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말은 쉽지만 결혼해서 부부가 평생토록 사랑하거나 평생 한 직장에 만족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사장님의 축사를 듣는 순간 그 회사에 평생 헌신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광고홍보 분야에서 최근에 가장 강조되는 용어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약혼, 관여)란 말이다. 약혼이라니? 판매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감정적 연결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마치 남녀가 만나 약혼을 하듯 브랜드를 사랑하게 해야 한다는 것.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다 상품까지 구매하면 결혼에 골인하고 구매하지는 않으면 파혼하는 셈이다. 따라서 인게이지먼트는 브랜드와의 ‘인연 맺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계기를 만들어 서로 공유한다는 점에서 브랜드와의 인연 맺기가 중요한데, 인게이지먼트가 자주 일어날수록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영원한 사랑을 강조한 광고 슬로건에서 인게이지먼트(약혼)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 드비어스 론칭 광고 (1947) /사진=김병희 교수
▲ 드비어스 광고 (1976) /사진=김병희 교수
▲ 드비어스 광고 (1987) /사진=김병희 교수

드비어스(DeBeers)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캠페인(1947~)은 견고한 다이아몬드를 영원한 사랑에 비유하며 세계인의 약혼과 결혼 풍속을 바꿔놓았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라는 슬로건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가 폭락해 미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자 드비어스의 오펜하이머 회장은 다이아몬드 90%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장의 아들 해리 오펜하이머(Harry Oppenhimer)는 무조건 처분하겠다는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하며 할리우드의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다이아몬드를 협찬하자고 했다. 1945년의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은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에 출연한 조안 크로포드(Joan Crawford)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24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걸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영원한 사랑을 갈망했지만 이미 두 번이나 이혼했던 그녀는 협찬에 대해 감사해하며 이렇게 말했지만, 이 말은 잠시 주목을 끌다 금세 잊혀졌다.

1947년,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의 광고회사 NW에이어(N.W. Ayer)의 신출내기 카피라이터 프랜시스 제러티(Frances Gerety)는 드비어스 광고를 준비하며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1988년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약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받던 전통이 극소수의 상류층에는 있었지만 보편화되지는 않았기에 정말 곤혹스러웠다는 것. 몇날 며칠 날밤을 새우며 카피를 쓰다가 피곤에 지쳐있는데 문득 조안 크로포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는 것. 그래서 다이아몬드를 단순한 보석이 아닌 영원한 사랑의 상징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 또한, 광고제작 회의 때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고 쓴 초벌 카피를 보여주자 아무도 들떠하지도 호응해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뉴욕 타임스>, 2013. 5. 3).

우여곡절 끝에 처음의 카피를 살려 광고가 나갔고, 이때부터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자 약혼과 결혼의 증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 슬로건으로 인해 미국인의 90% 이상이 드비어스를 알게 되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약혼과 결혼 예물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에는 1947년에 비해 판매고가 50.4%나 증가했다. 제러티는 그 후 25년 동안이나 드비어스 카피를 썼다. 그녀는 많은 커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징표를 안겨주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작 자신은 마지막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가 83세로 사망하기 2주전에 발행된 광고 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의 1999년 특집호에서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선정했다.

영화배우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로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007시리즈의 7번째 작품 제목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로 정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으리라. 이후 드비어스는 “오른손을 들어봐요(Raise Your Right Hand)”(2003) 같은 새로운 캠페인을 시도했지만 이전 캠페인을 결코 능가하지는 못했다. 새로운 캠페인을 하는 와중에도 미국에서는 2015년 12월의 연말연시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다시 사용했다. 중국에서도 2016년 12월에 새로운 보석 콜렉션 엔드리어(Endlea)를 선보이면서 전설적인 슬로건을 부활시켰다. 이 슬로건은 소멸되지 않고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직장 선택이나 결혼에 있어서 처음에 다짐했던 마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평생을 바쳐 사랑하겠다던 뜨거운 맹세도 시간이 흐르면서 헤실바실 묽어져 버린다. 국내외의 저명한 스타들이 약혼이나 결혼에 앞서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받았다는 둥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것도 잠시 너무나 빨리 차갑게 식어버렸다. 사랑이든 직장이든, 평생을 가지 못하고 그토록 빨리 열정이 식어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쉽게 깨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것만 같던 달콤한 약속도 결혼 한 달 만에 허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뿐이겠는가? 입사 면접장에서는 평생을 바칠 듯이 말했다가도 입사 후 한 달도 안 돼 마음이 바뀌거나, 탐나는 사람을 영입할 때는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겠다고 해놓고 막상 입사하고 나면 말을 바꾸는 경영자도 있다. 만약 서로 간의 약속을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하게 간수했더라면 서로 간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깨지는 일은 없으리라. 결국 서로가 얼마나 정성껏 약속을 지키느냐에 따라 인게이지먼트의 수준이 달라진다. 서로가 감정적 경험을 촉발함으로써 ‘인연 맺기’를 진화시켜야 시간의 흐름을 이겨낼 수 있다.

바야흐로 선남선녀가 결혼하는 계절이다. 결혼은 준비하지 않고 결혼식 준비만 하는 커플들이 많다. 지금의 약속을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히 지키겠노라는 다짐하는 마음 준비가 결혼식 준비보다 중요하다. 영원한 사랑이란 말처럼 쉽지 않기에. 결혼이란 아차하면 변할 수 있는 계약 관계이므로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