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1년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그가 연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이 3연임을 하면서 탁월한 통화정책을 펼칠 때다. 2000년대 이전 그린스펀 의장은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를 겪었지만, 금융국난의 와중에서 영웅 같은 중앙은행 총재가 탄생했으니 그린스펀 의장처럼 연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한은 총재와 같은 요직은 이런 시장의 요구와 전혀 다른 과정에 의해 결정됐다. 전 총재 본인은 “연임하시라”는 말을 들으면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는 않았지만, 연임을 위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당시 금융통화위원은 다른 인물이 전 총재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벌써 열심히 ‘운동’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했다.

그해 국정감사는 전철환 총재 임기 중 마지막이었다. 한국은행 구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전철환 총재의 발언 사이에는 지난해와 다른 한숨이 섞여있었다. 듣는 사람은 전 총재가 4번째 치르는 국감에 이제 피로를 감추지 않는 듯 했다. 심정적으로는 애초에 연임 생각이 없는 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치른 국정감사도 이 총재가 이번 임기 중 치른 마지막 국정감사다. 이주열 총재가 또 다시 한은 총재로 국정감사를 받는 경우는 내년 3월 이전에 또 한 차례 국감이 열리거나 이주열 총재가 연임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 총재 연임 가능성이 국감을 5개월 만인 내년 3월 다시 할 가능성보다는 좀 더 높은 편이다.

이주열 총재의 이번 임기 마지막 국감은 앞선 세 차례와 달리 상당히 여유로운 분위기로 끝났다.

앞서 세 번의 국정감사 동안 이 총재는 줄곧 금리인하의 당위성을 추궁 받았다. 정부 간섭에 의한 금리 인하라는 지적과 함께, 가계대출이 이제는 생계형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됐다.

그러나 올해는 한은의 지난 1년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고 앞으로 가능성이 매우 높은 금리인상에 대한 보완 당부가 주를 이뤘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23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 왼쪽부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신인석 금융통화위원. /사진=장경순 기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계대출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면 한계가구가 7만 가구 늘어나고 한계가구의 금융부채는 24조7000억 원 증가한다”며 금리를 인상할 때 이를 감안하라고 주문했다.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과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만 올리고 예금금리는 그대로 두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광림 의원은 “4대 은행이 대출금리만 올린 결과 상반기 이익이 4조300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4%나 증가했다”며 “반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5조원에 달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의원들은 시중은행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한국은행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주열 총재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은행의 자금 운용과 리스크 관리는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맞다”며 한은이 나서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산하기관이었던 은행감독원이 1998년 금융감독원으로 분리된 이후는 한은이 시중은행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다. 한은 총재가 시중은행들 행태와 다른 방향을 제시해도 은행들이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고, 오히려 한은의 위상에 흠집이 나기 쉬운 형편이다.

이 총재 국감 3년 동안 독립성 확보를 강하게 주문했던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이번에는 색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1일 거래량이 이미 주식거래를 초과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관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기만료 6개월을 남겨둔 이 총재는 가상화폐와 같은 미래적 이슈에 대해 “태스크포스를 통해 계속 보고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주열 총재 임기 4년 동안 가장 여유로웠던 이날 국정감사는 같은 날 진행된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보다 간발의 차이로 좀 더 일찍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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