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번째 국정감사는 무난... 향후 국감은 성적이 관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23일 취임 후 처음 국회 국정감사는 무난했다는 것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평가다. 현재 원내 5당 가운데 현 정부와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감 도중 이런 평가를 내놓았다.

이날 국감이 저녁시간으로 접어들 무렵,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회장이 취임 전 언론 기고한 글을 살펴봤다”며 “‘엣지’있고 감이 있는 칼럼들을 많이 쓰셨더라”고 평했다. 김선동 의원이 예시한 칼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중 쓰인 것들로 ‘기업부실 몰랐나 숨겼나’ ‘대통령은 정말 모르시는 것 같다’는 등의 제목을 갖고 있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오늘은 데뷔 국감이라서 그런지 안전한 답변만 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그는 “오늘은 질문보다는 앞으로 3년 동안 구조조정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이동걸 회장이 “그동안 지체된 구조조정을 하나하나 가닥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하자 김선동 의원은 “또 정답 비슷한 얘기만 한다”고 반응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이진복 정무위원장도 회의를 진행하면서 “너무 조심스럽고 돌다리 두들기는 자세를 취하는데 용기를 가지고 직무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이진복 위원장은 특히 해양진흥공사를 해양수산부에만 관리를 맡기지 말고 산업은행이 적극 역할을 할 것을 주문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이동걸 회장은 이진복 위원장에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지원해 주시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고 답했다.

현실적으로 취임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이동걸 회장에게 야당이 강하게 비판을 하기도 마땅찮은 시점이었다. 이동걸 회장은 이날 “취임한 지 한 달 12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런 시점에서 무리한 비판은 정치공세로 일축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풍도 가져올 수 있다.

임기 동안 이동걸 회장은 두 차례 국정감사를 더 받게 된다. 내년과 내후년의 국정감사도 올해와 같이 훈풍이 불 지에 대한 평범한 정답은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시했다.

미국 동부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인 김종석 의원은 예일대 경제학박사인 이동걸 회장에게 “이 회장이 낙하산인사인지 아닌지는 결과가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3년 동안 산업은행이 어떤 성과를 내느냐, 특히 지난 세월 구조조정 부진뿐만 아니라 은행의 방향설정이 이리저리 흔들렸던 혼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날 이동걸 회장이 답변하는 동안 뒷줄에 앉아있던 산업은행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전임자인 동명이인 이동걸 전 회장 시절의 인사들이다. 이동걸 현 회장은 아직 주요 인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 국회 정무위원회의 2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앞줄 오른쪽)과 김도진 기업은행장(앞줄 왼쪽). 이동걸 회장 뒤에는 산업은행 간부들이 앉아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산업은행은 이동걸 전 회장 시절인 지난해 연말 조직개편을 하면서 국제본부를 폐지하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추진하던 간부들은 대부분 현재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방안은 이동걸 당시 회장을 비롯해 유관기관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국가신용도를 함께 하는 산업은행의 국제본부 폐지가 국가적 국제금융 역량 위축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은행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 당시 한국 은행권이 단 한 푼도 구할 수 없는 외화를 가장 먼저 구해오기 시작했던 곳이다. 금융국난의 시기를 앞장서서 뚫고 나가는 돌격대 역할을 수행했다. 이것은 산업은행이 국가와 같은 신용등급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은행 자체 이윤보다 국가적 차원에서 첨단 금융상품 기획을 해왔던 덕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역사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가진 국제금융 부서 인력들로서는 국제본부 폐지 시도가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제본부 폐지는 백지화됐어도 국제금융에 오래 몸담았던 인력들이 입행 후 처음으로 고위간부가 돼서 다른 업무로 배치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특히 국제 업무를 담당할 것이 유력했던 임원은 관행과 달리 2년 만에 조기 퇴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다가 또 다시 ‘IMF 위기’와 비슷한 상황을 맡게 되면 당시의 산업은행 역할을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일이다.

국제본부 폐지는 백지화됐지만 지난해 연말의 간부진이 바뀐 것은 이동걸 전 회장이 이동걸 현 회장으로 교체된 것뿐이라, 이 방안이 완전히 철회된 것인지도 미지수다.

민유성-강만수-홍기택 전 행장 또는 회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형성됐다는 논란도 무성하다. 은행이 특별한 문제없이 순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인맥논란은 ‘말 잔치’에 그칠 일이다. 그러나 현재 산업은행 처지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개발경제 시대에는 한국은행에 자존심으로 맞서는 곳이란 다소 허황된 집단정서도 있었던 곳이지만, 산업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일까지 지난해 벌어졌다. 산업은행으로 인해 애꿎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간섭에 무너졌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동걸 현 회장은 산업은행 역사상 체면이 가장 바닥에 떨어진 시점에 부임했다. 은행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는 이동걸 회장의 ‘깐깐한 금융선비’로서의 면모가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김종석 의원이 강조한대로 은행의 실적이다. 내년과 내후년 국정감사 분위기가 과연 올해와 같을 것인지도 여기에 달려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