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면일 것으로 믿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직원들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봤었다. 왜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기자에게 직원들은 규정 때문에 안 된다는 시비다.

말다툼이 길어지다 보면 기자를 자처하는 이 사람은 자신이 국회 누구를 안다는 엄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안다고 하는 사람에는 국회의장도 들어가고 국회 사무총장, 또 무슨 의원도 들어갔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체포된 최민식이 경찰서에서 “마! 내가 느그 서장하고 어제도 밥먹고! 어! 사우나하고! 어!”라고 소리치는 장면 비슷하다.

그런데 영화는 1980년대 상황이고, 그 싸움이 벌어진 때만 해도 2010년대다. 국회의장도 안다는 분이 일개 직원하고 아귀다툼을 하려는 이런 사람들을 국회 직원들은 절대 무서워하지 않는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느그 서장하고 다 했어"라고 고함치는 장면은 한국 아재들의 호통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진='범죄와의 전쟁' 장면.


싸움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게 사람의 천성이긴 하지만, 기다리는 기자의 입장에서는 내 취재증 발급이 늦어지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속으로는 10년, 20년 세월이 지나도 절대 저런 식으로 구악질하는 기자는 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하게 된다.

허세 부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게 단련된 사람이라면 아마 국회직원들일 것이다.

국회는 국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서 법으로 관철시키려는 곳이다. 그런 본연의 속성이 있어서 그런지, 여의도 국회 일대는 항상 과장된 표정과 행동거지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기보다 국회 근처만 오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다. 누군가와 악수를 하면서도 눈은 혹시 지금 더 중요한 다른 사람이 지나가나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차를 타고 마포대교만 건너면 바로 소박한 소시민으로 돌아온다.

도시 속의 섬 여의도에서 이렇게 하루종일 허세 에너지만 극대화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국회직원들이다. 출입담당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언론담당 직원들은 언론인들 특유의 공세적 태도를 접해야 한다.

국회 직원 앞에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심정으로는 대단한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끼겠지만, 똑같은 행위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대부분은 생각이 정반대로 바뀔 것이다.

그때 자신도 저런 짓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면, 정말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 들어야 마땅한데, 사람의 방어본능이 또 그렇지 못하다. 지금에 이르러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과거 추태를 인정하면, 오늘 당장 ‘멘탈’을 보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오는 본능적 대응 가운데 그나마 남들에 대한 피해가 적은 것이 망각이다. 그런 ‘쪽 팔린 짓’을 한 자체를 잊는 것이다.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는 몰골이 밉상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태도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언제나 자기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잡아떼는 핑계꾼들이나, 아예 ‘무조건 직원은 기자편의를 봐줘야 한다’는 구악사상으로 몰입한 사람들은 여전히 구제불능이다.

국회직원들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다. 이 사람들이 정해서 제시하는 절차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취재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한시 빨리 기사를 읽으려고 하는데, 직원들한테 “나를 이따위로 대접하냐”고 다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도 원칙적으로 참 이해하기도 어렵고, 따르기는 해도 동의할 수 없는 점은 있다.

최근 국정감사 취재를 갔다가 명함이 없어서 취재허가를 못 받은 적이 있다. 급히 재직증명서를 전송받아 처리하긴 했지만, 국회 취재 13년 만에 명함 때문에 취재에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이다.

알고 보니 지난 10일부터 취재증 발급에 명함을 제시하라는 규정이 추가돼 있었다. 지난 9월 임시국회 취재 후 국회에 올 일이 없어서 이런 변화를 모르고 있다가 하필 그날 명함이 한 장도 없다보니 생긴 일이다. 회기든 아니든 국회에 부스를 설치해 기자가 상주하는 언론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든 규정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더욱 주의해서 지킬 일이다. 그러나 의정활동에 대한 언론의 접근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헌법적 원칙의 일환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그와 달리, 명함은 언론사뿐만 아니라 ‘유령회사’도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참으로 임의적인 물건이다. 근처 인쇄소에서 얼마든지 만들어올 수 있는 명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이미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 취재를 해 오던 기자의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국회 직원들은 한번 철학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국회직원들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는 명함 타령을 하게 된 사연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2010년이 되기 전만 해도, 상주출입증이 없어도 임시취재증 만으로 출입을 할 수 있던 때가 있다. 일부 언론사가 사진이 없는 임시취재증으로 여러 기자들이 돌려가면서 쓰다가 이것이 적발됐다. 이후 임시취재증만으로는 별도 출입절차를 가져야 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문제의 언론사는 국회 기자실에 취재석을 여러 개 확보한 주요 일간지라고 했다. 소형 언론사는 이렇게 취재증을 돌려써야 할 만큼의 인력 자체가 없다.

또 얼마 후부터는 취재증을 받아도 상임위원장 허가를 받아야 사진취재가 되는 일도 생겼다. 정보기관 직원들이 취재증을 가지고 국회를 돌아다닌 일이 발생한 직후에 생긴 변화다. 만약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면 기자는 한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푸대접’을 받으면서 굳이 국회 취재를 왜 가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하다.

아무리 국회 기자실에 수 백 개 언론사가 상주부스를 설치하고 있어도, 본지가 취재를 가면 이들과 전혀 다른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이 국회가 기자들에게 최대한 취재 편의를 제공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소위 ‘메이저’ 언론사가 사고를 치고, 국가 정보기관이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사후 처리에 따른 불이익은 비상주 언론사들의 몫이 됐다.

그동안 여의도에는 애꿎은 국회직원들한테 “나 국회의장 잘 아는데”라고 소리치는 유사 기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때문에 이런 불이익을 어디다 크게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사정이 어떻든 간에 국회직원들하고는 절대 싸울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