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1)...메이쟈징 치약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단속사회. 피로사회. 조작사회. 풍요사회. 위험사회. 전투사회. 해체사회. 낭비사회. 폐기사회. 분열사회.

한국사회의 ‘지금’ ‘여기’를 진단하고 있는 학계의 용어들이다. 하지만 이 10개의 용어만으로도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지만 ‘부패사회’란 용어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감사원은 여러 공공기관을 감사한 결과 100여 건의 채용 비리를 적발해 현재 검찰에서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강원랜드 사례는 채용비리의 압권이자 부패사회의 결정판이다. 2012년과 2013년의 신입사원 518명 중에서 무려 95%가 넘는 493명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입사했다는 것.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민영기업이나 공기업 경영자들은 생산성 증대를 강조하면서 직원들에게 청렴한 업무 처리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청렴하기는커녕 부패의 온상이 되어 회사에 치명적인 손실을 안기기도 한다. “하인은 꼭 주인만큼만 정직하다”는 서양 속담이 괜히 나왔을 리 없다. 2017년 초에 발표된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6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3점으로 176개 나라 중에서 52위를 차지했다. 부끄럽게도 국가별 순위가 2015년에 비해 15위나 낮아졌다. 조직에 세균이 서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치약 광고에서 확인해보자.

▲ 메이쟈징 치약 '로마' 편 (2012) /사진=김병희 교수
▲ 메이쟈징 치약 '이집트 문명' 편 (2012) /사진=김병희 교수

중국 상하이쟈화(上海家化)에서 생산하는 메이쟈징(美加净, Maxam) 치약 광고 ‘로마’ 편과 ‘이집트 문명’ 편(2012)에서는 치아에 건축물이 건설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들의 입속에 상주하는 박테리아(세균)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활동함으로써,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건축물도 만들고 이집트 파라미드 내부에 있는 왕과 왕비의 시체 안치소 같은 공사를 하며 자신들의 문명을 건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테리아가 당신의 이에 붙어 건축 공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질 것이다.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인해 충치가 생기는 현상을 이처럼 생생하게 설명한 광고는 일찍이 없었다. 헤드라인으로 쓴 “세균이 서식하지 않게 하세요(別让细菌蛀下来)” 같은 권고가 불필요한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광고다.

광고회사 제이월터톰슨상하이(JWT上海)의 광고 창작자들은 이 광고의 중국어 헤드라인을 영어 “Don’t let germs settle down”으로 번역해, 2012년의 칸광고제에 출품해서 금상을 받았다. 입속에 상주하는 박테리아를 즉시 없애지 않으면 오래도록 서식하며 자신들의 찬란한 문명을 건설해나간다는 시각적 비유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파라미드 내부의 방 모양은 7개월 동안의 3D작업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세균의 노동으로 건설한 로마와 이집트 문명을 디테일이 살아있는 시각적 표현으로 완성함으로써, 충치가 생기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광고가 집행된 이후, 메이쟈징 치약에 대한 브랜드 호감도는 41% 상승했고,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의 72%가 구매 의사를 밝혔으며, 월 판매 수익은 56%나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1898년 홍콩에서 화학제품 회사로 출발한 상하이쟈화(上海家化)는 현재 중국 최대의 화장품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2011년에는 국유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했으며, 2012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화장품회사인 카오(花王, かお)의 독점 대리권을 확보했다. 상하이쟈화에서는 생활용품, 화장품, 가정용 홈케어 제품 등을 주로 판매하며, 코티(Coty)나 아디다스 같은 수입제품도 취급하고 있다. 상하이쟈화의 산하 브랜드에는 리우선(六神), 메이쟈징(美加净), 쟈안(家安), 바이차오지(佰草集), 칭페이(清妃), 가오푸(高夫), 커커(珂珂), 솽메이(双妹) 등이 있다. 물론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메이쟈징 치약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치약 브랜드다.

치아가 좋을수록 수명이 더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다. 사회조사를 할 때면 성, 연령, 직업 같은 인구통계적 특성을 반드시 묻게 된다. 여기에서 연령(年齡)의 나이 령(齡) 자는 이 치(齒) 변에 명령할 령(令) 자를 더한 것이니, 이의 명령이 곧 연령(수명)이라는 뜻이 되겠다. 문자 하나에도 깊은 뜻을 담은 선인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소장수들은 소를 사고 팔 때 소의 입을 벌려 이의 상태를 확인해 소의 나이와 건강을 가늠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와 수명의 상관관계가 속설만은 아닌 듯하다.

치아 관리를 잘 해서 오래오래 잘 살면 좋겠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이를 썩게 만드는 세균은 이에만 서식하는 게 아니다. 탐욕 앞에서 쉽게 뜨거워지는 우리 마음속에서는 부패의 박테리아가 더 빨리 자랄 수 있다. 나랏일을 하면서 국민들의 세금을 훔치거나 기업을 경영하며 회사 돈을 빼돌리는 소드락질도 도처에 만연하고 있으니, 부패의 세균이 증식을 넘어 가히 창궐하는 수준이라고 하겠다.

이제,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경영자들은 직원들에게 청렴하게 살라고 주문하기보다 자신들부터 먼저 부패와의 단절을 다짐해야 한다. 치약 광고의 카피를 패러디해 “부패의 세균이 서식하지 못하게 하세요(別让腐败的细菌蛀下来)”라며, 하루 한 번씩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 전 총리는 부패 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라 하면서, 오죽했으면 “지배층의 영혼을 정화하라”고 강조했을까 싶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부패의 박테리아가 마음속에 서식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다잡이야 한다.

사실 누구의 입속에나 세균은 존재하기 때문에 충치가 생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충치란 세균이 만드는 산성(酸性) 물질이 이의 표면을 부식시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식후에 양치질을 잘 해서 세균을 떨쳐내면 치아가 썩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누구나의 입속에 세균이 서식하듯,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부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유혹이 일어날 때마다 부패를 떨쳐내겠다며 마음속도 양치질하는 노력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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