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2)...닛신식품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기업이나 공공분야의 경영자들은 구성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독촉하는 일이 많다. 아이디어 제안상 같은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시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적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물론 예외도 있을 터. 아이디어 경영을 하겠다며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도, 경영자들은 아이디어를 실행할 예산은 지원하지 않으려 한다.

행사 때만 반짝 주목받고 사장되는 아이디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구현되려면 그것을 현실화시킬 충분한 예산이 필요한데, 경영자들은 돈 안 드는 아이디어에만 관심을 보이니 안타깝다. 이번에 소개하는 닛신 컵누들 광고는 아이디어를 구현할 충분한 자금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세상에 결코 나오지 못했으리라.

▲ 닛신 컵누들 광고 '원시인과 모아 타조' 편 (1992) /사진=김병희 교수

일본 닛신식품(日淸食品)의 컵누들 광고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원시인을 소재로 삼아 ‘배고파?’ 캠페인을 전개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컵라면이 일본에서는 컵누들이다. 늘 배가 고팠을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이 동물들을 잡아먹으려 쫓아다닌다는 내용이 핵심 아이디어다. 사슴의 원조인 신테토케라스(Synthetoceras), 날개 달린 뱀인 익룡 케찰코아틀루스(Quetzalcoatlus), 타조의 일종인 모아(Moa), 코끼리과의 멸종 포유동물인 매머드(Mammoth), 에오세에 살았던 초식성 포유류인 우인타테리움(Uintatherium), 멧돼지 조상인 자이언트 워터독(Giant  Warthog), 대왕 오징어인 자이언트 스쿼드(Giant Squid) 등이 차례로 시리즈 광고에 등장했다. 원시인들은 이 동물들을 추격하거나 낚시해서 먹잇감으로 삼으려 했다.

여러 시리즈 중에서 ‘원시인과 모아 타조’ 편(1992)은 가장 주목할 만하다. 광고가 시작되면 거대한 체구의 모아가 자기 몸집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키 작은 원시인들에게 쫓겨 도망가고 있다. 잠시 후 거의 잡힐 정도까지 원시인들이 뒤따라온다. 거대한 몸집의 모아가 왜 도망치는 것일까? 광고계 사람들이라면 거의 가 다 아는 이 광고는 그동안 공룡을 쫓는 원시인으로만 소개되어 왔다. 이 광고는 육식 공룡이 아닌 초식 공룡이라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육식 공룡이라면 원시인을 잡아먹어 버리면 될 테니까. 지금의 뉴질랜드 지역에서 살았던 모아(Moa) 새는 타조(Ostrich)의 일종으로 싸우지 않는 새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계속 원시인에게 쫓겨 도망을 가지만 지혜가 있다. 낭떠러지가 나오자 그 앞에서 잠깐 멈춰 서서 육중한 몸을 살짝 점프하자 원시인들은 계속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그 순간 땅을 쿵하고 밟자 원시인들 모두가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린다. 곧이어 “배고파(Hungry)?”라는 한 마디 음성이 들리며, ‘커뿌누들(cup noodles)’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알리며 광고가 끝난다. 타조는 시속 70Km로 달리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새인데, 모아의 질주 속도와 원시인들의 식욕을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 닛신 컵누들 광고 '원시인과 우인타테리움' 편 (1992) /사진=김병희 교수

계속되는 시리즈인 ‘원시인과 우인타테리움’ 편(1992)에는 코뿔소의 조상이 등장한다. 에오세에 살았던 거대한 초식성 포유류인 우인타테리움(Uintatherium)이 등장하는 이 광고의 구조는 ‘원시인과 모아 타조’ 편과 유사하다. 광고가 시작되면 원시인들이 벌집에 매달린 꿀벌처럼 우인타테리움의 몸에 새까맣게 붙어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동물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매달려 있을까 싶다. 견디다 못한 우인타테리움이 거대한 몸집을 슬쩍 흔들자 원시인들이 후드득 나가떨어진다. 그래도 안 떨어지고 계속 괴롭히는 원시인들이 있다. 코뿔소가 몸을 더 크게 흔들자 머리와 몸통에 붙어있던 원시인들은 다 떨어져나갔는데, 엉덩이 부분에는 여전히 붙어있다. 그러자 코뿔소는 계속 몸을 흔들어 끝까지 버티는 한 명(5번째 컷)까지 내동댕이치고 사라지는데, 잠시 기절했던 원시인들이 다시 일어나 뒤쫓기 시작한다. 이때 “배고파(Hungry)?”라는 카피 한 줄이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몹시도 배가 고팠을 원시인들의 일상을 통해 배가 고플 땐 컵누들을 먹으라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닛신식품은 1971년 9월부터 커뿌누들(カップヌードル, cup noodles)을 발매한 이후 세계 최초의 컵라면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컵누들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 캠페인이 칸 국제광고제에서 1993년 그랑프리, 1994년 금상, 1995년 은상, 1996년 동상을 잇달아 수상하게 되면서부터다. 광고회사 하쿠호도(博報堂)에서 기획하고 도호쿠신샤(東北新社)에서 제작한 이 캠페인은 광고계에 컴퓨터 그래픽(CG)을 바탕으로 하는 디지털 CM의 태풍을 몰고 왔다.

이 광고로 일본 광고계의 거장이 되어버린 광고감독 나까지마 신야(中島信也, 1959~)는 당시에 겨우 서른 서넛이었다. 영상에서 매력(魅力)을 일구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즐겨 말했던 그는 광고 창작에 앞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원시인은 배고픔을 달래려고 늘 동물을 쫓아다니지 않았을까? 원시인에게는 먹거리가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배가 고팠을 원시인을 소재로 해서 광고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모여 원시인의 생생한 생활이 형상화되었고, “배고픈 사람 없습니까?”라는 처음의 카피도 사족 같아 “Hungry?”라는 한 마디로 줄였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캠페인을 전개하는 도중에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향상되었다. 여기에서 ‘조금씩’은 무척 의미 있는 표현이다. 당시에 닛신 컵누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컵라면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 경쟁 브랜드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광고 목표는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데 있지 않았고, 기존의 점유율을 지키는데 있었다. 그리고 매출 신장이 아닌 매출액을 떨어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배고파?’ 캠페인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광고 목표를 달성했음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도 좋아졌고 제품광고가 기업광고의 기능까지 해냈다.

일본 <닛케이신문(日経新聞)>의 월간지 <닛케이 트렌디(Nikkei Trendy)>는 2012년 5월호에서 10년 후에도 잘 팔릴 상품 베스트 30을 발표했는데, 닛신 컵누들이 1위에 올랐다. 원시인에게 ‘배고파?’라고 물어보는 빅 아이디어가 성공함으로써 브랜드 선호도가 계속 상승했기에 그런 평가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닛신식품은 이 캠페인을 오마주(Hommage, 존경과 존중)하는 차원에서, ‘배고픈 시절(Hungry Days)’이라는 캠페인을 2017년에 선보이며 현대 일본인의 생활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경영자들은 원시인의 ‘배고파?’ 캠페인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안목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도록 충분한 자금을 뒷받침해주는 판단력이 더 중요하다. 광고 9편으로 이루어진 캠페인에서 1992년 당시의 기준으로 광고 1편 당 제작비가 4000만~5000만엔(한화 4억~5억 원)이나 들었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미국 LA북쪽의 사막지대에서 촬영이 이루어졌지만, 이밖에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많은 장면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상당한 제작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닛신식품의 경영자들은 고심 끝에 많은 제작비를 승인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배고파?’ 캠페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의 휴지통으로 사라져버렸을 터.

돈 안 드는 아이디어만 찾느라 비용을 승인하는 데는 가년스러운 경영자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마케팅 분야의 스테디셀러인 『마케팅 불변의 법칙』(1994)에서는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디어는 소용없다는 ‘자원(resources)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자들이 꼭 알아야 할 지침이다. 돈 안 드는 아이디어만 좋아하다 보면, 꼭 그 정도로만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크게 성공할 수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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