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33)...미국 우유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기업이나 공공분야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경영 목적에 합당하다는 판단에 따라 어떤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서, 윗사람의 한 마디에 따라 그 일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경영자는 어디서 들으니 프로젝트에 문제가 많다더라고 하면서, 사전에 그런 정보도 몰랐냐는 투로 부하들을 깰 때도 있다. 경영자가 들은 정보가 옳은 것이라면 사업 취소가 당연한 일이겠지만, 경쟁사에서 은근히 흘린 정보에 따라 경영자의 판단이 춤춘다면 아랫사람들은 황당해할 수밖에.

목적에 충실해서 판단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으리라. 널리 알려진 ‘우유 챙겼어?’ 광고에서 목적에 충실한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유가공업자협회(California Milk Processor Board)의 ‘우유 챙겼어?’ 캠페인은 1993년 10월에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 들어 탄산음료의 소비가 급증했고, 설상가상으로 우유가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는 소문도 나돌아 우유 소비량이 급격히 떨어졌다. 우유의 특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파한 제프 굿비(Jeff Goodby)는 꼭 필요한 순간에 우유가 없어 난감한 상황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유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고심 끝에 뽑아낸 키워드는 “우유 챙겼어(Got Milk)?” 우유를 더 좋아하게 할 수는 없어도 우유가 없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박탈의 전략’을 구사했던 셈이다.

1993년의 첫 번째 TV광고는 한 남성이 땅콩버터를 잔뜩 바른 빵을 먹으며 라디오 퀴즈쇼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저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질문이 나오는 순간 “아론 버”라고 전화하고 싶었지만 빵을 먹고 있어 목 메여 말을 못한다. 옆에 있던 우유팩을 집었지만 비어 있다. 먹던 빵을 오물거리며 “아우움 버”라고 간신히 전화 응답을 하지만 정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정답을 알아도 우유가 없어 퀴즈 문제를 놓치는 역사 마니아의 사례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 GotMilk(갓밀크) 광고들 /사진=김병희 교수

늘 우유를 챙기라는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한 광고다. 이 광고가 나간 후 캘리포니아 지역의 우유 판매가 한 해 동안 7%나 늘었고, 감소하던 우유 소비량도 20년 만에 증가했다. 이 광고는 2002년 USA투데이의 여론조사 결과 위대한 광고 10선에 선정되었다. 

첫 광고가 성공한 다음 1995년부터는 광고회사를 옮겨 보젤(Bozell)에서 맡았다. 유가공업자교육프로그램(Milk Processor Education Program)의 ‘우유 챙겼어?’ 시리즈는 1995년에 시작해서 2014년까지 계속했다. 우유 마신 입술 위에 남는 하얀 콧수염 자국을 소재로 활용했던 탓에 우유 콧수염(milk mustache) 광고로도 알려졌다. 이 시리즈에는 슈퍼맨(1995)을 비롯해, 배트맨, 케이트 모스, 알랙스 트레벡, 우피 골드버그, 노아 와일, 데이비드 베컴, 스티브 오스틴, 안젤리나 졸리, 나오미 켐벨, 비욘세와 티나 놀즈, 해리슨 포드,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빅터 쿠르즈(2013)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유명인이 등장했다. 스타들은 우유를 마신 뒤 입술 위에 남은 우유의 흔적을 보여주며,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우유 챙겼어?”라고 소비자들에게 물어보았던 것.

갤럽은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인 성인남녀 91%가 이 캠페인을 알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2004년의 우유 소비량은 1995년에 비해 46%나 증가했다. 광고 자체도 인기를 얻어 일상생활에서 “Got (  )?”라는 수많은 패러디물이 등장했다. 한편으로는 우유소비 촉진운동이 전 세계로 번져 일본의 ‘에스크 밀크(Ask milk)’나 케냐의 ‘두 밀크(Do milk)’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밀크 프린스’나 ‘도심 속 목장 나들이’ 캠페인이 활성화되었다. 미국에서는 2014년부터 ‘우유 챙겼어?’의 후속 편으로 ‘밀크 라이프’라는 새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금은 우유 콧수염 시리즈를 1993년의 론칭 광고를 진화시킨 명작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광고 전문가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제프 굿비도 1993년에 자신이 썼던 “우유 챙겼어?”를 콧수염 시리즈에 넣으면 부적절하다고 혹평했다. 유명인의 우유 콧수염과 광고 헤드라인이 상관성이 낮아 콘셉트를 구현하지 못하고, 유명인의 명성에만 얹혀 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보젤의 광고 창작자들은 우유 콧수염이 “Got Milk?”와의 상관성을 오히려 높여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광고 목적에 충실한 의사결정이었으며, 유명인이 추천하면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라며 광고주를 설득했다. 잠시 흔들리던 광고주도 결국 보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명작 캠페인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

목적에 충실한 의사결정은 경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윤리적인 문제점도 없고 목적에 충실했는데도, 귀가 너무 얇아 결정 사항을 자주 번복하는 경영자들의 도섭을 경계해야 한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어망득홍(漁網得鴻)’이라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漁網)을 쳤는데 기러기(鴻)가 걸렸다(得)고 그걸 버려야 하느냐는 뜻. 물고기가 아닌 기러기가 그물에 걸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버리지 말고 그냥 먹으면 된다. 그물을 친 목적이 먹을 것을 잡기 위해서였으니까. ‘우유 챙겼어?’ 캠페인에서 목적에 충실한 의사결정을 중시했던 다산 선생의 실학(實學) 향기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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