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들 유행처럼 '내 권리 포기하겠다'... 제도의 모순 입증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요즘 프로야구 구단들은 마치 유행처럼 소속 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로 이적해도 보상선수를 받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래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가 새 팀을 찾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지게 배려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구단들의 이런 결정은 선수에 대한 배려로 존중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것은 야구계가 갖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프로야구 역시 하나의 산업인데, 번창하는 산업에서는 저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한다. 계약상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자꾸만 벌어진다면, 그것은 해당 산업계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FA에 대한 보상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최고 스타 몇몇은 어떤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데려가려는 팀이 있지만, 이런 선수는 한 해 두세 명을 넘기기 어렵다. 그 외 10명이 넘는 다른 FA 선수들은 데려오고 싶은 구단이 있어도 지나친 보상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됐다. 말이 자유계약이지, 대다수 선수들에게는 ‘종신 직장’같은 제도가 지속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원래 구단이 선수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무리하지 않은 재계약으로 해결해 왔지만, 이 자체로 FA 본연의 취지는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올해는 구단들부터 과도한 보상받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선수이동을 촉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한국 프로야구의 과도한 보상선수 규정은 이 제도 도입당시 지나친 노파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도입됐다.

FA를 데려오는 구단은 이 선수가 받은 직전 연봉의 세 배를 원래 구단에 주던가, 직전 연봉의 두 배와 핵심 20명을 제외한 한 명의 보상선수를 보내야 한다.

이런 규정을 둔 취지는 ‘열심히 키운 선수의 과도한 이동을 막자’는 것이었다.

구단 편의적인 발상에서 도입된 규정인데, 현실에서 적용해보니 한심한 행태가 속출하면서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직전 연봉에 따라 금액적 보상을 해야 한다니, FA 선언 직전 연도의 선수에게 구단이 연봉을 대폭 올려주는 행태가 나타났다. FA로 옮겨갈 때의 보상금액을 늘려서 이동을 막으려는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말이 자유계약이지 사실상 이적금액이 발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상선수 문제는 더 심각하다. 25명이 출전하는 야구에서 20명을 제외한 선수 중에는 여전히 팀의 장단기 핵심 전력이 되는 선수들이 존재한다. 이런 선수를 희생하면서 과연 FA를 데려올 가치가 있는지 구단의 회의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마다 10여명의 FA들은 맥 빠진 상태에서 원래 구단에 남아야 하는 현실이 이어졌다.

과도한 보상이 FA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킬 것이란 지적은 도입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꼰대 같은 노파심’을 이겨내지 못했다. 오랜 세월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야구계는 이런 노파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구단들이 먼저 ‘내 권리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 유행이 되는 웃지 못할 현실이 됐다. 이런 현상은 제도 도입당시 쓸데없는 장벽을 자꾸 갖다 쌓은 행태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를 떠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본연의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FA가 도입되는 시대를 맞아서도, 여전히 예전 관습에 젖은 편의주의가 우월했다. 그것이 구단들 스스로에도 전혀 이득 될 것이 없는 허상임을 야구계 전체가 깨달은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선수협의회가 출범하던 2000년, 야구계 고위관계자는 TV토론회에 나와 노조활동은 불순하다는 인식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가 시민사회 전체의 거센 비난을 초래했다. 이런 전근대적 의식수준이 지금은 크게 바뀌었다고는 해도 제도는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구단들 스스로에 의해 험한 꼴을 보고 있는 프로야구 FA 제도와 같은 문제는 우리 사회 다른 분야에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제도를 도입할 때, 여전히 구식 관행에 젖은 사람들의 ‘꼰대’같은 잔소리가 알맹이는 다 날려버려 개선의 시간표를 무한정 늦추는 것이다.

프로야구 FA 제도는 한심하다고 비난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일식대접 못 받은 지 오래됐으니 김영란법을 고쳐야 한다고 푸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볼 일이다.

직장에서는, 같은 연배 동료들도 이제는 다 싫다고 하는 구시대 관행의 마지막 수호자가 돼 있는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기자와 같은 40~50대 남성들이 당면한 가장 커다란 인생질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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