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비급여, 수지타산만 앞세울 일 아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약수동 4거리에 빵집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소아과의원이 있던 건물이다. 10년 전 정도가 아니라 40년 전 얘기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 이 병원의 원장선생을 찾아가야만 병이 나았기 때문이다.

항상 이 병원을 찾아가는 길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른 병원을 갔는데 밤새 나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아침에 열이 펄펄 나면서 가던 길이다. 그러나 낯익은 원장선생님 얼굴 볼 때부터 긴장이 풀어져 주사 한 대맞고 병원문 나설 때는 완전 기운이 회복됐다. 아픈 핑계로 그날 학교도 결석을 하고 따사로운 점심 햇살에 마음이 풀어지니 집에 돌아가는 길은 주변의 이런저런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장충체육관 근처여서 복싱경기 포스터가 많았는데 한국 선수가 상대하는 동남아시아 선수들의 모습은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경기결과는 무섭게 생긴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대기록 희생양이 되던 시절이다.

이 선생님을 찾아가기 시작한 건 우리 형 어릴 때 부터였다고 한다. 엄마가 들려준 얘기로는, 형이 태어난 직후 감기가 너무 심해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았다. 1959년의 한국에서는 아이를 키우지 못할 각오까지 해야 했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이 김영진 선생이다. 그는 우리 형을 보더니 “약을 이만큼 쓰면 이만큼 좋아지다가 다시 열이 날 것”이라며 “얘는 지금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진단을 했다. 그의 진찰 덕택에 갓 난 형의 병이 나았다. 그로부터 우리형제 뿐만 아니라 외사촌들까지 모두 김영진 선생을 찾아갔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심하게 어지러운 증상이 있어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아는 사람 소개로 간 곳인데 강남의 꽤 큰 건물을 갖고 있었다. 여러 명 의사 중 여의사가 배정이 됐다.

의사는 검사를 해봐야 되는데, 의료보험이 안 되는 검사니 15만원 비용이 든다고 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었는데, 워낙 생전 처음 겪는 증상에 놀란 터라 그대로 따랐다.

아무 이상 없다는 얘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만약 검사를 안 받았으면 두고두고 불안했을 것이니 비용을 지출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몇 달 후, 비슷한 증상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집근처 이비인후과를 검색해 한 곳을 찾아갔다. 먼저 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조촐한 곳에 나이가 많은 선생님 한 분 뿐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약을 받아왔을 뿐, 먼저와 같은 검사는 얘기도 없었다. 설명은 오히려 이 분이 더 자세했다.

똑같은 증상에 다른 진찰을 받으니 먼저 병원에서 바가지 쓴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깊어졌다. 혹시 환자들 깐깐한 기세를 사전에 막으려고 여의사를 배정한 것인지,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 아니면말고 식으로 비싼 검사를 권유받은 건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런 의심이 싹트면, 사람은 지금까지 내 건강을 지켜준 많은 의사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의 감정이 정지되는 순간을 맞는다.
 

▲ 의료인들이 지난 1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케어 반대 및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반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개업의사 수 만 명이 서울 시내 거리로 나와서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을 비판했다.

이들은 비급여항목 축소가 동네병원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비급여가 동네병원의 경영에 핵심적인 요소일지는 모르나, 병원을 찾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신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시비는 근본적 문제를 비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환자가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재정이 지불한다는 것이다.

환자 개개인보다 더 공신력을 갖춘 의료재정이 돈을 준다는데 의사들이 이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얼까. 문제의 핵심은 여기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의료보험을 통해 의사들에게 제공되는 수가가 지나치게 낮다면 여기에 일차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가가 지나치게 낮아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서 직접 보충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의료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사람이 아플 때만 의사가 아쉽고, 건강할 때는 의료인을 이익집단으로면 여겨서야 건강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건강을 지켜주는 의술에는 그만한 보답이 따라야 한다. 쓸데없는 잔병에 재정소모가 과도하다면 이걸 고쳐서 정말 인명을 보호하는 데 재정이 우선 투입돼야 할 것이다.

2006년 의료보험에 중증보장제도가 도입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호평하고 있다. 특히 암과 같은 돈이 많이 들던 중병에 본인부담 10%가 적용되는 것은 한국의 사회안전망을 여러 차원 높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운명의 엇갈림은 있다. 본인부담 10%는 1차 항암치료에 적용된다. 1차 항암치료에서 고치는 사람이 절반이고 나중에 재발하는 사람이 절반이라고 한다. 재발을 하게 되면, 그때 쓰는 약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재정이 화수분도 아니고 무한정으로 모든 치료를 다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료보험의 적용 확대는 그 나라 국민이 안심하고 생산성 증대에 몰두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다.

우리 어릴 적부터 건강을 지켜준 의사선생님들을 기득권세력으로 몰아붙이거나, 마침 마음에 안 드는 정권 들어서서 꼬투리 찾고 있었다는 식의 비판은 모두 치유불가능 정치중독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국민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따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궁리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