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이란 단어가 쉽지 않은 어휘다. 이걸 나름으로는 이렇게 이해했다. ‘실제 성장이 잠재성장을 초과한 부분은 과열성장이 된다’라고.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잠재성장이 5%안팎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2002년의 성장률이 7.2%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고 무리하게 내수 진작을 밀어붙인 영향이 컸다. 과연 다음해 카드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2003년 성장률은 2.8%, 약 3%에 그쳤다.
 
바로 전년 잠재성장을 초과한 부분만큼 그 다음해 깎여 나간 것이다. 물론 잠재성장의 어휘가 이렇게 간단한 덧셈 뺄셈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우리 경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제학박사가 아닌 기자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한동안 정책당국자들이 “잠재성장 7%”를 부르짖고 다닌 적이 있다. “1970년대는 못해도 두자릿 수 성장을 했는데 지금은 왜 그걸 못하냐”고 따지는 성장 파시스트도 있다.
 
하지만 잠재성장이란, 어떤 훌륭한 나랏님이 나서서 의지대로 높이고 낮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재성장이 높아지려면 그 나라의 문화 과학기술 부문에서 근본적인 역량의 상승이 벌어져야 한다. 아무리 멍청한 부족장도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환기에 취임했으면 매년 엄청난 사냥 실적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좀 더 날카로운 사냥무기를 개발하면서 잠재성장이 높아진 것이다.
 
잠재성장은 제 자리인데 무조건 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쓸모도 없는 땅에 공사를 벌이고 황무지만 있는 섬으로 다리를 놓고 하면 잠시 건설경기가 돌아가면서 성장률은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은 뒷날의 성장률을 깎아먹는 행위다. 다시 말해 부실 과열 성장인 것이다.
 
1960~1970년대의 고도성장기와 1998년 ‘IMF 위기’ 극복과 함께 찾아온 정보기술(IT) 혁신기에는 한국의 잠재성장이 두 자릿수에 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는 시기에는 더 이상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 혁신이 있기 전에는 잠재성장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의 경우 2%만 넘어도 과열 성장을 우려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현오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16일 “잠재성장 3%대에 이미 진입했을 수 있고 이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모처럼 책임 있는 인사로부터 나온 솔직한 얘기다. 벌일 사업 있는 대로 거의 다 벌였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창의력 나게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입시지옥의 균일화된 교육으로 내 몬 나라에서 애초부터 잠재성장의 상승은 바라기도 힘들었다.
 
정치적 미사여구로 5%니 7%를 떠들고 다닌 사람들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잠재성장이란 단기부양이나 미봉책과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다. 그 나라 국민과 사회의 저력에 관한 지표다. 이를 키우려면 당연히 멀리 내다보는 슬기와 인내를 가져야 한다.
 
지금 당장의 정책보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아이와 저 아이가 개성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배울 때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아이가 읽고 외운 것이 글자 하나 공식 하나까지 다 똑같다면 그 나라 경제는 베끼는 경제, 남의 기술 도입하는 경제 이상 되기 어렵다.
 
이렇게 장기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데, 임기 4년이나 5년 이내에 올릴 수 있다고 사기치는 위정자들은 더욱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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