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24>...끝없는 주상절리는 아름다운 관광 상품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이번엔 2017년 12월 9일(토) 걸었던 임진강 적벽길을 소개하려 한다.

길을 걷다보면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변화해가는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만난다. 오늘 만나는 임진강에선 명멸했던 우리의 역사를 접하게 된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만나고 고려왕조의 마지막도 만나게 된다. 길에서 만나게 될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의 선조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연천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강 적벽길을 걸으면서 느껴볼 생각이다.

이 코스엔 전쟁의 흔적과 옛 군사시설들이 남아 슬픈 역사를 말해준다. 또한 이 길을 걷다 보면 들판과 허브빌리지, 하수종말처리장, 군남홍수조절지, 카페와 랜드 등 경제적으로도 의미 있는 볼거리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천혜의 주상절리는 이곳 최고의 관광 상품이다.

▲ 숭의전 /사진=박성기 대표
▲ 숭의전 /사진=박성기 대표

숭의전에 도착했다. 몇 겹으로 껴입었지만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옷 속을 파고든다. 손이 시리고 춥다. 어수정(御水井)에서 물 한 모금 들이켰다. 고려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철원과 개성을 오가는 중간지점인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물을 마셨다고 해서 어수정이다.

어수정을 돌아 등지고 오르니 숭의전이다. 아미산 끝자락 잠두봉 밑 임진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고려 왕조의 묘전(廟殿)이다. 원래 이곳은 고려의 원찰인 앙암사(仰巖寺) 터였는데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 태조가 이곳에 고려의 왕을 모신 사당을 짓게 해서 숭의전이 세워졌다. 고려의 7왕을 모시면서 제사를 지내다가 문종 대에 들어와서 조선의 종묘에 5왕을 모시는데 고려조 묘전에 7왕을 모시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다 하여 고려의 태조 왕건을 비롯한 4왕과 고려 신하 16위를 모신 사당이 되어 지금에 까지 전해오고 있다.

예전에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였지만 한국전쟁으로 다 타버리고 1970년에 다시 지었다한다. 너무 이른 탓일까. 숭의전 문이 잠겨있다. 오전 10시부터 관람이 된다고 하니 숭의전 문이 열리기를 30분 더 기다렸다.

▲ 한문홍이 쓴 칠언절구 중작숭의전(重作崇義殿) /사진=박성기 대표

숭의전 관람을 마치고 잠두봉(蠶頭峯)에 올랐다. 잠두봉은 강 건너에서 보면 마치 누에가 누워있는 모습이어서 잠두봉이다. 임진강을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 강에 가라앉은 썩은소[쇠]를 맨 돌로 된 배가 보이는 듯하다. 절벽을 내려다보니 추풍낙엽처럼 몸을 던진 사비의 낙화암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낙화암이 떠오른다. 잠두봉 수직 절벽에 새겨진 마전군수 한문홍의 칠언절구 중작숭의전(重作崇義殿) 한 수가 옛 왕조의 영화와 쇠락을 이야기 한다.

麗祖祀宮四百秋 (고려 사당 지은 지 어느덧 4백년)
誰敎木石更新修 (그 누가 돌과 나무로 수리하게 할 것인가)
江山豈識興亡限 (강산은 어찌하여 흥망의 한 알리오)
依舊蠶頭出碧流 (잠두봉은 변함없이 푸른 강물에 떠 있구나)
往歲傷心滿月秋 (지난 세월 보름달 뜬 가을에 마음 애처롭더니)
如今爲郡廟宮修 (이제야 군수 되어 묘궁을 수리했네)
聖朝更乞麗牲石 (조정에 고려 비석(사당) 제사 다시금 비옵나니)
留與澄波萬古流 (맑은 물결(징파강)과 함께 머물며 만고에 흐르리라)

▲ 초대 숭의전사 왕순례의 묘 /사진=박성기 대표

잠두봉 능선을 따라 길을 진행한다. 높지 않은 가벼운 아미산 끝 능선이지만 벌써부터 땀이 등에 서린다. 잠두봉 능선을 따라 700미터를 진행하여 초대 숭의전사(崇義殿使) 왕순례의 묘에 이르렀다.

조선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망한 고려의 뿌리를 뽑아야 했다. 왕씨들을 배에 태워 물에 수장시키고 씨를 말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성을 바꾸고 깊이 숨어들어가 목숨을 부지했다. 그 중 일부가 충청도 공주로 숨어들었다. 문종 조에 들어와 멸족을 풀고 왕씨를 숭의전사로 삼으니 초대 숭의전사가 바로 왕순례다.

▲ 몇 년 전 가서 찍은 고구려 당포성 /사진=박성기 대표

당포성을 지나 임진 적벽길 진입하기까지 3.5킬로는 차도이기에 버스를 타고 지나쳤다. 당포성을 지나치니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임진강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당포성을 들러 숭의전까지 걸었다. 오랜만에 지나치는 멀리 당포성 성곽위로 외로운 나무는 여전히 의연하다.

이 당포성 지역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의 중요 격전지로 천혜의 방어막인 적벽을 이용하여 성곽을 쌓고 적을 방비했는데 당포성이 그러하다. 수심이 낮아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낮은 지역은 군사적 용도의 성들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당포성이나 호루고루성, 은대리성 등 연천지역의 고구려 세 성이 이러한 용도의 성이다.

당포성에서 3.5킬로 강을 따라 오르면 한탄강과 만나는 합수머리다. 합수머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동이리 주상절리 적벽이 시작된다.

▲ 임진강 주상절리 적벽 /사진=박성기 대표

버스는 동이리 임진강 적벽길 입구에서 멈춰 섰다.

임진강이다. 장관이다. 길게 끝이 안보이게 건너편 주상절리 적벽이 이어져 온다. 동에서 흘러내려오는 임진강이 추운 날씨에 더 푸르다. 강물은 많이 낮아져 있다.

▲ 도도한 임진강 /사진=박성기 대표

임진강은 우리의 많은 슬픈 역사를 간직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쟁패가 걸린 곳이며, 선조가 왜를 피해 강을 건너야 했던 수모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고, 피어린 한국전쟁의 수많은 상처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임진강은 북한 땅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시작하여 동서를 가로지르며 내려온다. 강 수면은 잔잔히 넘실댄다. 그러면서 어지러운 은빛으로 반짝이며 재잘거린다. 사연 깊은 이야기를 품은 강은 육백 리를 달려와 제 이야기를 듣느라 반질해진 돌들을 토해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서(西)로 흐르다 교하에서 한강과 만나 황해(黃海)로 빠져나간다.

▲ 강물이 토해낸 돌들이 반질반질하다 /사진=박성기 대표

임진강을 따라 이어진 적벽은 높이가 20~25미터다. 2.5킬로에 걸쳐 견고한 성벽처럼 길게 펼쳐진 주상절리대다. 적벽과 강물에 취해 강가로 내려섰다.

바닥엔 강이 토해낸 반질반질한 돌들이 가득하다. 조심조심 돌을 밟으며 잠시 걷다가 뚝 위로 올라 길을 계속했다.

▲ 임진강변을 걷고 있는 도반 /사진=박성기 대표

협곡을 끼고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길게 늘어선 강 건너 적벽이 견고한 성처럼 웅장하고 장관이다. 강 따라 주상절리를 보며 한동안 걸었다. 자연병풍과도 같은 임진강 주상절리는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지역 최고의 관광 상품이다.

▲ 수현재교 /사진=박성기 대표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적벽길이 끝나고 황공천 앞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인도교를 만났다. 세상을 떠난 형을 그리워하며 영화배우 조재현 씨가 건립한 수현재교다. 다리를 건너 다시 뚝방길을 길게 따라 걷는다. 여러 조형물들이 꾸며져 있는 공원이 보인다. 임진물 새롬랜드다. 이곳은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데 이렇듯 멋지게 만들었다. 조재현갤러리와 평화누리길 테마카페 등이 보인다. 가족단위로 와서 쉬었다 가면 참 좋게 꾸며져 있다. 새롬랜드가 끝나고 임진대교를 지나쳐 1킬로를 걸어 무등리 보루숲길에 도달했다.

▲ 무등리 2보루 /사진=박성기 대표

숭의전부터 내내 이어오던 평탄한 길이 끝나고 낡은 철계단을 밟고 오르면서 보루길이 시작되었다. 가파르게 오른다. 등에 땀이 가득해서 웃옷을 벗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 치이는 돌 하나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500 미터를 더 가니 무등2리 보루의 흔적이 보인다. 보루는 적군을 막거나 공격하기 위해 흙과 돌로 튼튼하게 쌓아놓은 고구려의 진지다. 약 100명이 주둔하는 규모로 작은 성이다. 잠시 목을 축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임진강을 앞에 두고 적들을 방비할 수 있고 강위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군사시설이다.

▲ 목책이 둘러진 고성산보루 /사진=박성기 대표

다시 길을 이었다. 몇 개의 작은 산들을 오르내리며 2.5킬로의 숲길을 걸었다. 오후로 접어들며 날이 풀렸다. 겉옷이 거추장스러워 배낭에 구겨 넣었다. 작은 산을 오르내리다보니 숨이 가쁘고 등에 땀이 가득해서 덥다. 잠시 쉴라치면 다시 추워져 재빨리 다시 걷곤 한다. 무등리 보루에서 이어온 길을 따라 2.5킬로를 한 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고성산 보루다. 약 150미터의 높지 않은 정상이다. 고성산 보루는 꼭대기를 둘러 목책이 설치돼 있다.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울타리가 있기에 보루로 생각되지 아무것도 없다면 그냥 돌무더기로 생각할 만큼 허술하다. 이곳이 봉수대였다고도 하니 예전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 고성산보루를 지나 내리막길. 낙엽이 가득해 길이 잘 안 보인다. /사진=박성기 대표

급격한 내리막이다. 낙엽이 길 위로 살짝 덮여 있는 탓에 발 딛기를 조심하며 길을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뒤따르는 이들이 안 보인다. 30여분을 기다리니 멀리서 후미가 보인다. 길을 잘못 들어 잠시 헤매다가 온다고 그런다. 항상 곁길이 많은 산길에서는 표식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자칫 한눈을 팔면 길을 잘못 들게 된다.

▲ 허브빌리지 가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1킬로를 더 가서 허브빌리지다.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중간에 너무 해찰한 모양이다. 멋진 허브빌리지이지만 나중에 다시 한 번 와보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원래는 허브빌리지를 통과해 군남면 홍수조절지까지 갈 요량이었지만 너무 어두워져 여기까지만 하고 길을 멈췄다.

숭의전에서 출발하여 임진 적벽길과 고구려의 보루길을 15킬로나 걸었다.

숭의전에서 패망한 왕조의 슬픔을 보았다. 임진강을 생각하면 다른 강들과 다르게 한이 느껴진다.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배를 타고 밤중 월강할 때의 비참함과 한국전쟁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슬픔이 오면 안 된다. 지금도 오싹한 전쟁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한다. 마치 곧 핵전쟁이라도 날 것 같다. 이 길을 걸으며 역사를 다시 생각해본다.

원래는 지나쳐온 당포성을 길을 마치고 다시 들렀다 가기로 했으나 못가고 예전 다녀왔던 것으로 대치했다. 같이 걸었던 도반들에게는 미안한 부분이다. 다음엔 호로고루성과 은대리성, 당포성 등 성터들만 걷는 걸음을 기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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