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0>...일본 리쿠르트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좋은 사람을 뽑기란 어떤 분야에서나 쉽지 않다. 기업에서는 서류 전형부터 시작해 인성검사와 적성검사를 거쳐 두세 차례의 면접까지 하고 나서 적임자를 뽑지만 그래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구인구직의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에서 새해 들어 기업 658개사를 대상으로 ‘2018년 신입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2%가 신입사원을 채용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계획과 실행은 다르기 때문에 이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라 반갑다.
 
채용, 구인구직, 헤드헌팅, 아르바이트, 취업정보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리쿠르트(Recruit) 회사들이 늘어난 데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리쿠르트 투어’ 참가자를 모집하는 행사도 다반사로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뽑는 쪽인 경영자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일까? 여건이나 자격이 모두 다를 테니 이 또한 정답이 없다.
 
다만 인생을 마라톤 코스에 비유하면서 자신과 회사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겠다는 사람을 기업이 선호할 것이라는 계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담론이 우리사회를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인생이라는 마라톤 코스에서 누구나 마라톤 선수로 뛸 테니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야 빛나는 미래가 열린다는 것.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의 리쿠르트 회사 광고에서는 인생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통렬하게 뒤집어버린다.

 
▲ 일본 리쿠르트(2014) 광고 /사진=김병희 교수

일본 리쿠르트 포인트(リクルートポイント)의 광고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 편(2014)에서는 마라톤을 소재로 활용해 인생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 광고는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전반부와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광고의 초반부에는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는 메시지가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마라톤 코스를 달려가고 있다. 인파의 물결 속에서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한 마라토너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오늘도 계속해서 달린다.
 누구라도 달리기 선수다.
 시계는 멈출 수 없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밖에 흐르지 않는다.
 되돌아올 수 없는 마라톤 코스.
 라이벌과 경쟁해가며
 시간의 흐름이라는 하나의 길을
 우리들은 계속 달린다.
 보다 빠르게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저 앞에는 반드시 미래가 있을 거라 믿으며,
 반드시 결승점이 있을 거라 믿으며.
 인생은 마라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생은 그런 것일까?”

한참을 달리던 한 마라토너가 코스에서 이탈하며 뒤를 돌아본다. 다름 아닌 영화배우 이케마츠 소스케(池松壮亮). 죽음 앞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가족들의 간절한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이시이 유야(石井裕也) 감독의 영화 '이별까지 7일(ぼくたちの家族, Our Family)'(2014)에서 차남 슌페이의 역을 맡아 유명해진 배우다. 전반부의 영상이 지나가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생은 그런 것일까?”라는 반문과 함께 후반부의 반전이 시작된다.

2분짜리 광고에서 정확히 58초부터 반전이 시작되며, 지극히 당연했고 너무나도 뻔했던 계몽적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깨트려버린다. 마라톤 대열에서 이케마츠 소스케가 이탈해 펜스를 넘어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자 사람들도 하나 둘씩 이탈해나가더니, 급기야 모두가 온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강물에 뛰어들거나, 남자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거나, 행글라이딩을 타며 공중을 훨훨 날아다닌다. 터널 속을 달려가기도 하고, 요트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복 차림으로 즉흥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이 흘러가는 가운데 다시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아니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야.
  누가 정한 코스야? 누가 정한 결승점이야?
  어디로 달리든 좋아. 어디를 향해도 좋아.
  자기만의 길이 있어.
  그런 건 있는 걸까? 그건 몰라.
  우리들이 아직 만나보지 못한 세상은 터무니없이 넓어.
  그래! 발을 내딛는 거야.
  고민하고 고민해서 끝까지 달려 나가는 거야.
  실패해도 좋아. 돌아가도 좋아.
  누구랑 비교 안 해도 돼.
  길은 하나가 아니야. 결승점은 하나가 아니야.
  그건 사람의 수만큼 있는 거야.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했는가?”

 광고의 마지막에서 잠시 달리기를 멈추며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다시 광야를 향해 내달리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동적인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음악 '레미제라블'의 OST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잔잔하게 깔리면서 내레이션과 웅장하게 만나고 있어 울림의 깊이가 더 깊었다. 사람을 채용하는 리크루트 회사의 특성에 알맞게 모든 인생이 훌륭하다는 핵심 카피를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광고 직후에 리쿠르트 회사의 선호도가 13.7% 향상되었고, 2015년 칸광고제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사실 인생은 마라톤처럼 정해진 코스를 달려가지지 않는다. 두려운 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마냥 여기저기를 누비는 가운데 인생의 어떤 모습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으리라. 광고에서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고 하지 않고,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すべての人生が,すばらしい.)”라며, 중간에 굳이 쉼표를 찍은 것도 우리들에게 생각의 여백을 남기고 있다. 일본 광고회사 덴츠의 카피라이터 미와이코 호소카와의 창작 솜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해진 길을 가야한다는 고정관점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기를 다져주는 가슴 뭉클한 메시지다.

취업하기도 어렵고 사람 뽑기도 어려운 우리 시대에, 지금 어떤 처지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자신의 인생이 훌륭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기회가 분명 찾아올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그런 사람들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인생에는 정해진 척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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