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2>...발뮤다 재탄생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기업 경영에 관련된 용어 중에서 마케팅이란 말처럼 자주 쓰이는 것도 없다. 마케팅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든 아니든, 입만 열면 다들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제 막 개업한 1인기업의 사장님도 마케팅이 중요하다 하고, 동네에 작은 문구점을 막 시작한 사장님도 마케팅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돈이 없어서 못하지 마케팅 수단의 하나인 광고도 하고 싶다고 한다.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일까? 정답은 여건이 안 될 경우 “마케팅을 줄여라!”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니까.

이럴 때 마케팅 활동을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에 끌릴 수밖에 없다. 디마케팅이란 수익성 없는 고객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서 수요를 줄이거나 고객을 실속 있게 관리하려는 전략이다.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창출한다는 80:20 법칙이 있다. 그 아래 40%의 고객은 수익의 30%를 창출하지만 하위 40%의 고객은 오히려 수익의 10%를 까먹는다. 고객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고객일 수 없다. 이때 하위 40%의 고객은 디마케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광고를 하지 않고도 우량 고객을 상대로 제품 소개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광고가 아닌 광고방송의 사례를 통해 확인해보자.

▲ 발뮤다 광고방송 /사진=김병희 교수

일본의 발뮤다(BALMUDA, バルミューダ)는 광고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케팅 활동을 최소화하는 대신 프리미엄 고객을 대상으로 디마케팅 활동에 치중한다. 정식으로 광고를 하지 않고 홈쇼핑 같은 광고방송을 통해 제품을 알리거나 제품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나 자사의 홈페이지에 올려 소개한다. 발뮤다의 공기청정기 제트클린(JetClean, ジェットクリーン) 광고방송 ‘부유물 실증’ 편(2012)에서는 에어 엔진(AirEngine)이 초미세 먼지까지 흡수한다며 탁월한 기술력을 강조했다.

영상이 시작되면 소파에 사람이 앉는 순간 먼지가 날아오르며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깨끗해 보이는 우리의 생활공간. 그러나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은 많은 부유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실내 활동만으로도 쉽게 날아오르는 부유물 속에는 미세먼지, 꽃가루, 바이러스, 알레르기성 물질 같은 건강에 직접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공기 중의 부유물을 철저하게 없애주세요(空気中の浮遊物を徹底的に取り除くために).”라는 자막이 뜨며 화면으로 눈길을 끌어 모은다. 실내 활동이 계속되는 한 공기 중의 부유물을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발뮤다 에어 엔진이 분당 1만리터 이상의 공기를 순환시기 때문에 부유물의 수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 “에어엔진은 실내의 모든 부유물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유해균을 제거하는 360도 효소 필터(360°酵素フィルター)를 채택했으므로” 공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도 단시간에 제거한다는 설명이 계속된다.

▲ 발뮤다 광고방송 /사진=김병희 교수

나아가 탈취 활성탄 촉매 필터가 암모니아나 포름알데히드 같은 냄새의 근원까지도 직접 분해해 제거하며, 터보팬으로 빨아들인 바깥의 청정 공기는 실내 구석구석까지 강력한 청정 바람을 분출한다고 했다. “에어 엔진은 곧바로 사용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동 버튼은 단 3개. 평소에는 오토모드로 24시간 가능하고, 청소와 환기 직후나 황사 및 꽃가루가 심한 계절에는 제트 클린 모드를 10분, 20분, 30분으로 선택하고, 제트클린을 최대 모드로 작동하면 서서히 풍량이 약해집니다.” 이렇게 설명한 다음 “방의 공기를 청결하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部屋の空気をきれいにする最も簡単な方法)”은 제트클린 공기청정기라고 하면서 광고방송이 끝난다.

발뮤다는 열넷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테라오 겐(寺尾 玄, 1973-)이 2003년에 설립한 가전 브랜드이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스페인을 거쳐 지중해 연안으로 1년 동안 여행을 떠났다가 록음악을 하겠다며 귀국해서 10여년 활동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 후 공장을 전전하다 창업해서 컴퓨터 주변기기를 만들었지만, 2009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시작되자 자신을 포함해 직원 3명이었던 회사는 도산 직전으로 몰렸다.

고민을 거듭하던 테라오 겐은 지구 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니 좋은 냉난방 제품을 만들면 수요가 급증하리라 판단하고, 거래처 사장에게 돈을 빌려 초절전형 선풍기 ‘그린팬(GreenFan)’을 만들었다.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2009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전 사태를 우려한 소비자들이 그린팬에 열광했고, 발뮤다는 도산 위기에서 벗어나 5년 동안 50배 이상이나 성장했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한 발뮤다는 2012년에 우리나라에도 진출했으며, 2018년 현재 종업원 85명의 강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발뮤다는 디마케팅 원칙을 시종일관 유지해 왔다. 테라오 겐 사장은 마케팅 비용은 거의 지출하지 않으면서도, 수천 번에 걸친 제품실험 경비는 줄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케팅 비용을 줄여 제품을 잘 만들면 소비자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 0.1밀리미터의 차이가 소비자의 마음을 가르기 때문에 프리미엄 고객의 마음을 얻으려면 먼저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 간결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은 발뮤다는 ‘소형 가전업계의 애플’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발뮤다의 그린팬 선풍기, 스팀 토스터, 전기주전자가 다른 브랜드보다 7-8배나 비싼데도 소비자들이 발뮤다의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현대의 소비자는 압도적인 기술력은 물론 아름다운 디자인을 중시한다. 테라오 겐의 말처럼 “새로움은 며칠만 지나도 옛것이 되지만 아름다움은 100년이 지나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케팅보다 제품 자체가 중요한 법. 따라서 디마케팅 전략은 마케팅의 다이어트나 군살빼기라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고객 확보와 수익 창출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의 수익 구조를 프리미엄 고객에 집중시키는 한결 수준 높은 전략인 셈이다.
 
방송에 정식으로 광고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홈쇼핑 채널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광고방송만 잘해도 얼마든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될 테니까. 입만 열면 마케팅을 하겠다고 노래 부르지 말고, 먼저 제품부터 잘 만들고 볼 일이다. 마케팅도 아니고, 광고도 아니다. 제품이 먼저다. 제품이 곧 광고이고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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