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46>...피아노 계단 등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사람의 심리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하라고 강조하면 더 안 하고 싶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 어떤 것을 하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데 윗사람이 지시하면 왠지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청개구리 심보다. 부모가 말하는 그 순간에는 “알겠어요!”라고 대답해놓고 나서는 결국 자기 생각을 하나도 바꾸지 않는 자식들의 반응을 떠올려보라. 이런 현상은 기업 경영자의 상하 간 의사소통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누구에게든 직접 화법으로 말하면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 반발하기 십상이다. 그 지시가 아무리 옳더라도 훈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심리 때문이다.
 
시간과 자원의 제약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 경영자로서는 곤혹스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터. 그럴 때마다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교수가 제시한 ‘넛지(Nudge)’ 개념을 써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건드린다는 것인데,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세일러 교수는 ‘소비자 선택의 긍정 이론을 위하여(Toward a positive theory of consumer choice)’(1980)라는 경제학 논문에서 넛지 개념의 원형을 제시했다.
 
이 논문에 대해 2002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였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단초를 열었다고 극찬했다. 평생 동안 인간의 두루뭉술한 사고 체계와 생각의 편향성에 대해 연구한 카너먼 교수는 학창 시절에 경제학 강의를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합리성이 매우 비현실적인 개념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심리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방법으로 ‘전망 이론’을 제시한 그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가정하는 주류 경제학을 부정했다. 자신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세일러 교수에게 그 공을 돌리기도 했다.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을 비롯해 여러 곳에 피아노 건반 같은 계단이 있다. 거기에도 넛지 개념이 적용되어 있다.

▲ 폭스바겐의 옥외광고 영상 '피아노 계단' 편 (2009) /사진=김병희 교수

폭스바겐(Volkswagen)의 옥외광고 영상 ‘피아노 계단’ 편(2009)을 보자. 친환경 자동차로 출시한 폭스바겐 블루모션의 프로모션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의 오덴플랜역에 피아노 건반의 계단을 만든 다음,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기록한 영상이다. 광고회사 DDB스톡홀름 지사에서 만든 이 영상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계단을 피아노 건반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상의 첫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역에서 나온 사람들 모두가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피아노 건반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자 처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도레미파솔라시도가 경쾌하게 울리는 음악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피아노 건반 계단에서 뜀뛰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장난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이 프로모션의 핵심은 기존의 계단을 피아노 건반 같은 계단으로 바꿔 절전하자는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내용이다. 재미있으면 사람들의 행동을 확실히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재미 이론(fun theory)’을 강조하며, 폭스바겐이 주도하겠다는 마무리 메시지를 내보내며 광고가 끝난다.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 이 옥외광고 영상에서는 전기를 아껴 쓰자며 직접 화법으로 강요하지 않고, 피아노 건반 계단을 밟으며 재미를 느낄 넛지 장치를 슬쩍 제시할 뿐이다. 프로모션을 전개한 결과, 넛지 장치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피아노 건반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비해 66%나 늘어났다. 그리고 이 영상이 유튜브에 노출되자 순식간에 100만뷰 이상을 돌파했다.
 
우리에게는 시간과 자원이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정보와 모든 대안을 샅샅이 검토하고 나서 의사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쓴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2009)에서는 우리들이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제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인간은 완전한 합리성, 완전한 자제심, 완전한 이기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핵심 주장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개념이 태동했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가정하는 주류 경제학의 전통과는 달리,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과 비이성성에 주목하면서 사회경제적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판단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심리적 요소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의 감정과 심리상태가 인간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한발 앞으로 다가서세요.” “당신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위에 이런 표어를 써 붙여도 소변이 튀는 것을 막는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오줌을 흘리면 안 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소변기를 닦아도 밖으로 튀는 소변 때문에 지린내가 진동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 관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네덜란드 경제학자 아드 키붐(Aad Kieboom)과 상의해 파리 한 마리가 그려진 스티커를 소변기 중앙에 붙였다. 그랬더니 소변을 보려고 바지를 내린 남성들은 파리를 겨냥해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남성들은 파리라는 넛지 장치를 조준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결국 설치하기 이전에 비해 80% 이상의 개선 효과를 보았다.
 
오줌을 흘리지 말라는 표어도 없었고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남성들은 파리를 겨냥하며 소변을 보았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과정을 통해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심리 상태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혼해 낳은 이종교배 자식이라 할 수 있는 행동경제학은 우리들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나 청개구리 심보를 이해하는데 있어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일방적 지시가 일상화된 기업 경영자들의 소통 방식에 있어서도 넛지가 필요하다. 부담감을 팍팍 주며 심리적 반발을 일으키는 일방적 지시보다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건드려 직원 스스로가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이득을 훼손하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 설계의 기술, 그것이 넛지가 아니겠는가? 넛지는 분명 행동경제학의 개념이지만 소통의 현장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자식이 커갈수록 어려워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에 있어서도 넛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를 비롯해 자식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기 시작하는 부모라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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