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1>...일본 장수기업들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모두가 오래오래 가는 사랑을 꿈꾼다. 경영자들 역시 오래오래 가는 기업을 일구려고 그토록 노력할 터.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통계치가 말해주듯,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디 기업뿐이랴, 작은 가게 운영도 마찬가지다. 하루걸러 한 집씩 새로운 가게가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걸 보면, 그리고 10쌍 중 세 쌍이 이혼한다는 사랑의 경영에 실패한 수치를 보면, 모든 경영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이토록 수상한 시절에 유서 깊은 가게를 뜻하는 노포(老舗, 老鋪)라는 말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에서는 노포(老舗)를 ‘시니세(しにせ)’라고 한다. 시니세는 동사 ‘시니스(しにす)’에서 유래한 것으로 따라한다는 뜻인데, 에도시대 이후 ‘가업을 잇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오래된 가게나 음식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일본 언론에 ‘시니세상장기업(老舗上場企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의 시니세는 오래된 기업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니세 기업을 알리는 영상물에서 오래오래의 가치를 느껴보자.

▲ 곤고구미의 홍보 영상 '오가와 칸지' 편(2015). /사진=김병희 교수

일본의 시니세 기업인 곤고구미(金剛組)의 홍보 영상 ‘오가와 칸지’ 편(2015)을 보자. 세계적인 명사 500명을 소개하는 영상 시리즈에 곤고구미의 회장 오가와 칸지(小川完二)가 선정되어 그가 어떻게 회사를 지켜냈는지 소개했다. 2006년, 곤고구미 계열의 건설회사가 위기에 봉착해 기업의 1430년 역사가 막을 내리려하자, 그는 후지은행(현 미즈호은행)에 사표를 내고 곤고구미를 위기에서 건져 올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는 회사 경영의 문제점을 섬세하게 진단한 다음, 곤고구미의 전통을 지키는 인정 넘치는 드라마를 써내려갔고 결국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곤고구미(金剛組, こんごうぐみ)는 지금부터 1440여 년 전인 578년에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 쇼토쿠(聖德) 태자의 초청으로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세 사람의 장인에 의해 설립됐다. 그들은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목수로 활동했는데,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 한국명 유중광)는 백제인 목수의 대표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 지금의 오사카성)를 593년에 건축한 이후, 607년에 우리에게 <금당벽화>로 익숙한 호오류우지(法隆寺)를 완공했다. 이후 이들이 일본에 남아 대대손손 시텐노지의 증축과 유지 보수를 맡은 것이 곤고구미의 시작이었다. 1955년 이후에는 주식회사로 변모했고, 현재 이 회사는 사찰, 아파트, 빌딩의 신축은 물론 문화재 건축물의 복원과 고건축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 교토 안내 동영상 '좋은 곳' 편(2012). /사진=김병희 교수

교토(京都)를 소개하는 동영상 ‘좋은 곳(いいとこ)’ 편(2012)도 인상적이다. 이 영상에서는 구운 떡으로 유명한 이찌몽지야와스케(一文字屋和輔, いちもんじやわすけ)를 소개했다. 일본인들은 이찌몽지야와스케가 이름이 길다고 하면서 ‘이찌와(一和, いち和)’로 짧게 줄여 부르기도 한다. 헤이안(平安) 시대 쵸호(長保) 2년인 서기 1000년에 창업한 곳이니,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과자점으로 알려져 왔다. 1018년 전에 창업한 구운 떡 전문점이 일본의 시니세 기업 3위에 올라와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상에서는 이찌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000년에 쿄루지(香隆寺)의 명물인 오가짱(떡, おかちん, 勝餅)을 이마미야신사(今宮神社)에 봉납한 일에서부터 이찌와가 시작되었다는 것. 여러 건물이 밀접해있는 가게인데 낡은 건물은 겐로쿠(元禄) 시기에 건축되었고, 새로운 쪽도 다이쇼시대(大正時代)에 만들어졌다는 것. 과자점 안에는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진 직경 3미터의 큰 우물이 있지만,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지금은 가게의 다른 우물에서 물을 끌어 올려 쓰고 있다는 것. 한입 크기의 떡을 대나무 꼬치에 꽂아 콩가루를 묻혀 매장에서 굽는데,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 접시에 담아 달콤한 된장 양념을 살짝 흘려 ‘구운 떡(あぶり餅)’을 완성한다고 설명하면서 군침을 돌게 했다.

2017년에 서울시에서도 39곳의 ‘오래가게’를 선정한 다음 <더, 오래가게>(2017)라는 소개 책자도 출판했다. 2018년에도 100곳을 추가로 인증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광 산업과 연계하려는 기획일 텐데 역사성, 일관성, 전통성, 고객 만족도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선정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시니세 음식점으로 선정할 때 얼마나 오래되었고 얼마나 오래된 맛과 메뉴를 아직 그대로 유지하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서울시의 ‘오래가게’ 기획이 얼마나 감동적인 결과를 낳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관광 상품화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본질이 흐려질 것이다. 시니세는 선정한다고 해서 인정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이점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즉시 도태되어 종말을 맞이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이런 판국에 시니세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어 시니세를 우리말로 하면 장수기업이다. 세계 장수기업 모임인 에노키안협회(Henokiens)에서 조사한 결과 일본에는 200년 이상 된 시니세가 3150여 곳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다. 곤고구미나 이찌와를 비롯한 일본 시니세의 공통점은 성장했다고 해서 함부로 다른 영역으로 손을 뻗치지 않고 한 우물을 팠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하더라도 과자점이면 과자의 메뉴를 늘리는 정도였지, 과자에서 돈을 벌었다고 해서 건설업에 진출하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모두가 변화와 변신을 외치는 상황에서 시니세는 변하지 않는 것도 소중하다는 가치를 알려준다. 오래오래 가는 기업을 일구고자 하는 경영자라면 시니세의 사례를 많이 공부하시기를 바란다. 늘 조금씩 변해가면서도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니세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 오래오래 가는 사랑을 꿈꾸는 커플들도 노포(老鋪)에 가보시기를. 그곳에 가면 조금씩 변해가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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