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들끓는 페이스북 신뢰 문제, 한국에서는 무관심한 이유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이 지난 2014년 한국 방문 때 입국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허기진 늦은 저녁, 음식 배달을 주문했다. 먹고 싶은 음식만 얘기하고 다음 말은 생략했다. 혹시나하는 기대에서다.

과연 전화를 받은 음식점 주인은 “여기로 가져가면 되지요?”라면서 내 주소를 얘기했다. 처음 배달을 시키는 집이다. 그런데도 기대대로 내 주소를 알고 있었다. 번거롭게 주소를 알려줘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내가 갖고 있는 배달책에 있는 30여개 음식점 주인이 모두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 집에 배달을 온 곳은 다섯 곳을 넘지 않는다.

아마 요즘은 음식점에 주소 공개되는 걸 예사롭지 않게 여길 한국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심지어 은행에서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는 정보가 수 년 동안 끊임없이 쏟아진 나머지, 이제 개인정보 누출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내가 음식 시켜 먹어서 전화번호가 알려진 것까지 신경을 쓸 여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물론 나는 만두국을 시켜먹었는데 쭈꾸미집 아주머니도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될 줄은 처음에는 몰랐었다.

최근 미국 중국의 무역전쟁과 함께 외신의 톱뉴스를 차지하는 것은 페이스북의 정보누출이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가 러시아 당국에 누출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뉴스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회장이 이 때문에 사과를 했는데 미국과 독일사람들이 이 사과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로이터가 26일 보도했다.

아직 때가 이르지만, 이런 불신이 지속되면 사회통신망의 절대강자인 페이스북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그런 걱정까지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아무튼 여기에 대해 페이스북은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열렬한 사용국가로 빼놓을 수 없는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보를 털어간 곳이 러시아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덜 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 미국과 유럽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예민해져서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을 가져갔을 때 순간 분노가 급증했을 뿐, 그 후로는 정서적으로 머나먼 곳의 일로 여기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신상정보에 대해 ‘더 털릴게 뭐가 남았냐’라는 자조도 페이스북 뉴스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오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말 그대로 ‘다 까놓고’ 사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러시아는 어쩌다가 2016년이 돼서야 내 정보를 가져갔냐”고 일축하는 사람도 있다. 맨날 이상한 소리만 올리는 페이스북의 내 정보를 가져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진짜로 써먹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한국인의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니 이걸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손이 부족해 별로 써먹지 못하는 면도 있다. 또 신상정보가 노출된 걸 당사자도 알고 있으니(노출 안 된 정보 역시 노출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공개된 정보는 더 이상 정보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불필요하고 위험한 정보노출을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소를 한번 잃었다고 해서 더 이상 소를 안 쓸 것인가.

주소나 전화번호보다 더욱 중요한 정보는 음식배달이나 페이스북 정도로는 새나가지 않게 막아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주민등록번호는 하도 많이 노출이 됐다하니 이걸 뒤늦게 막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접근 가능한 기능을 축소해서 주민등록번호 도용의 여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

이미 새 나간 정보는 차라리 그 정보의 가치를 줄여버리는 것이 해답이 아닐까.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흘러나간 정보를 다시 주워 담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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