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시장순응적' 통화정책에 담긴 미국의 고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의 금리는 지난 21일부터 미국보다 확실히 낮은 상태가 됐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1.50%,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1.50~1.75%다. 미국 금리가 0~0.25%포인트 더 높은 상태가 됐다.

한국 기준금리는 1주일물이고,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콜금리에 해당하는 하루짜리 금리다. 기간을 봐도 한국 기준금리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야 하는데 그게 역전됐다.

1990년대 중반, 금리 역전커녕 한미간 금리차가 축소된 것만으로도 1997년 외환위기 출발점이 됐었다. 당연히 한국 금융시장으로서는 우려를 안할 수 없다.

한미 금리의 역전 상태는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오는 6월이면 0.25~0.5%포인트, 9월에는 0.5~0.75%포인트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전혀 올리지 않을 경우 그렇다. 연말에는 금리격차가 0.75~1%포인트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과연 외국인들의 국내투자자금이 이탈해 미국으로 몰려가게 만들 것인가. 해답은 현재 미국경제에 그만한 생산성이 있느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오른쪽). /사진=뉴시스, Fed 홈페이지.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단어 하나다.

통화정책 기조를 나타내는 ‘시장 순응적(accommodative)’라는 말이다. 한때 금융시장에서 ‘추수적’이라는 비표준어로 해석했었다.

이 단어는 미국이 7년 만에 제로금리에서 탈피해 9년만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2015년 12월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성명서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가 1990년대와 같은 ‘선제적(preemptive)’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 현재 금융시장의 가장 큰 ‘믿을 구석’이기도 하다.

선제적 통화정책은 금리를 바꿔야 할 징후가 완벽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을 예방적으로 단속하기 위해 일단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이다.

이와 달리 ‘시장 순응적’은 Fed가 금리를 올리는데 있어서, ‘진정으로 올려야 할 때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 결정하겠다는 방침이 담겨있다. 말 자체로는 경제지표와 금융시장 상황을 살펴서 그만한 조짐이 나타난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경제상태에 대한 Fed의 고민도 담겨있다. 사상 최장 경기확장기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진정한 확장국면이냐는 것이다.

실업률은 낮아도 임금인상은 뚜렷하지 않다. 미국인들이 눈높이에 안 맞는 일자리를 참고 견디는 덕택에 나타난 지표상의 호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Fed의 목표인 2%에 못 미치고 있는 상태로만 봐서는, 순응적이냐 선제적이냐 갈림길에서 확실히 순응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Fed의 고민을 깊게 하는 것이 있다.

금융연구원이 금융브리프 최신호인 지난 25일자 국제금융이슈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소비자물가가 2% 목표에 도달한 후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상승세가 격화될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이 장기간 유지되고 있는데, 이것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들도 물가 상승요인이다. 감세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미국인들은 값싼 외국제품 대신 비싼 미국제품을 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많은 고용을 위해 미국인들이 비싼 자국 제품 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역시 Fed의 선제적 정책기조로의 전환을 막는 것은 생산성이다. 금리를 올려서 자금조달비용을 높여도 미국 기업들이 견딜 만큼 생산성을 내고 있느냐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캐나다 투자자문기관인 BCA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령화와 창업부진으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높아지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와 같이 싸게 생산해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비싸게 생산해서 비싸게 팔고 있으므로 기업 이윤 면에서는 크게 나아질 것도 없다. 미국 금리가 높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자금을 싸들고 미국시장으로 몰려가기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