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2>...'미쉐린 가이드'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10여 년 전부터 경영 현장에서 콘텐츠 마케팅(Contents Marketing)이란 말이 전염병처럼 창궐하더니, 이제는 대세를 넘어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전통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광고 효과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마케팅 기법은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고 소비자의 반응을 SNS를 통해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90퍼센트 이상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시도했다는 통계도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전통적인 4대 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에 광고를 하지 않고 특정 고객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확산시키는 마케팅 기법이 콘텐츠 마케팅이다. 따라서 콘텐츠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성 있는 소비자 행동을 유발하는데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콘텐츠 마케팅도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900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해 지금은 좋은 레스토랑을 안내하는 책의 대명사가 된 '미쉐린 가이드'의 초창기 판본에서도 콘텐츠 마케팅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세계 최초로 콘텐츠 마케팅을 전개한 회사가 미쉐린타이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위부터 아래 순서로) 미쉐린 타이어 옥외광고(1905)와 미슐랭 가이드 광고들(1900, 1918, 1920). /사진=김병희 교수

미쉐린타이어 옥외광고 ‘퍼레이드’ 편(1905)은 흥미롭다. 미슐랭 형제는 타이어로 사람 모형을 만들어 미쉐린타이어의 상징으로 삼은 미쉐린 맨(Michelin man)을 마차에 싣고 거리에 머물러 있다. 그 자체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옥외광고의 기능을 하고 있다. 미쉐린 맨은 1900년대 초반에 등장했으니 아주 오래된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광고에서도 “마실 거리(Boit L'obstacle)”(1900), “200개의 삽화(200 illustrations)”(1918), “미슐랭 대리점과 서점에서 판매 중(En vente chez les Stockistes Michelin et chez les Libraires)”(1920) 같은 카피를 써서, 미쉐린타이어를 알리는 광고와는 별도로 '미쉐린 가이드'를 꾸준히 알리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1895년, 앙드레 미슐랭과 에두아르 미슐랭(Michelin) 형제는 세계 최초로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장착한 자동차인 ‘번개’를 몰고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다.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자동차에 적용했던 셈. 이런 시도를 계기로 삼아 미슐랭 형제는 1889년에 프랑스 중부의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에 미슐랭타이어사를 설립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미쉐린타이어로 불리지만 프랑스에서는 처음부터 미슐랭타이어(le pneu Michelin)라고 했다.

1900년의 프랑스. 자동차가 3000여 대에 불과했고 도로 여건도 너무 열악해 프랑스인들은 운전 자체를 모험이라고 생각해 운전하기를 꺼려했다. 미슐랭의 비즈니스도 자전거 타이어를 생산하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어 매출 신장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미슐랭 형제는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야 타이어 생산도 늘어난다고 생각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된다. 마침내 떠오른 아이디어가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의 발간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사업할 수 있는 파이를 먼저 키우는 문제가 시급했던 것. 그 일환으로 자동차 수요를 늘리려면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1900년, 미슐랭 형제는 299쪽의 '기드 미슐랭' 초판 3만5000부를 찍어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이 책에는 자동차 여행 정보, 맛있는 식당, 숙박 시설, 여행 팁, 주유소의 위치, 지도, 타이어의 교환 방법 등 다양한 정보 콘텐츠가 담겨있었다. 그 후 해마다 판을 바꿔 발행되었다. 이 책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1908년에 미국의 포드자동차에서 모델 티(Model T)를 생산하면서부터 미슐랭타이어는 날개를 달았다. 1913년에 미슐랭은 스페어타이어를 차에 부착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업계에 확산시켜,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되니 자동차 타이어의 매출도 저절로 늘어나게 되었다.

▲ <미쉐린 가이드>의 결정적 판본들(1900, 1926, 1933, 2009). /사진=김병희 교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에 접어들어 미슐랭 형제는 우연히 들렀던 타이어 정비소에서 '기드 미슐랭'이 작업대를 지지하는 받침대로 쓰이는 것을 보고, 무료 제공의 방침을 바꿔 유료화를 결심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직접 돈을 지불한 그 무엇에만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놓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920년부터는 한 권당 프랑스화 7프랑 또는 미화 2달러를 받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1911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발간되기 시작했고, 2006년부터는 미국 판이, 2007년에는 아시아권에 진출해 일본 도쿄 판이 발행되었다. 2009년에는 홍콩과 마카오 판의 발간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도 가치를 널리 인정받았다. 현재는 전 세계 90여개 나라에서 연간 1800만 부 가량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호텔에 1926년부터 별점을 붙이기 시작해서 1933년에 완성한 미쉐린 스타(Michelin Star),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선사하는 친근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1957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빕 그루망(Bib Gourmand), 신선한 재료로 잘 조리한 음식을 기준으로 선정되는 레스토랑에 2016년부터 ‘접시’라는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 더 플레이트(The Plate) 등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같은 미쉐린 스타의 5가지 평가 기준은 책의 권위와 공정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제,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가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미쉐린 가이드'의 확산과 더불어 미쉐린타이어도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성공의 핵심적인 원동력은 타이어를 광고하지 않고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안내서를 발간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타이어의 잠재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00여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 세계의 울퉁불퉁했던 도로들도 이제 첨단 고속도로가 되었고, 미쉐린의 성장과 더불어 음식문화도 발전했다.

핵심 콘텐츠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경험해 보았다.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콘텐츠가 없는 콘텐츠 마케팅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창한 구호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다. 여러 기업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마치 구세주처럼 여기며 많은 비용을 쓰고 있지만, 자기 회사에 적합한 흥미로운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1900년으로 돌아가 미슐랭 형제의 전기라도 읽어보면, 유튜브에서 수천만의 조회 수를 올릴 콘텐츠 마케팅의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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