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4>...영국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혼밥. 혼술. 혼놀. 혼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퇴근 후에는 혼자서 외롭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이런저런 신조어가 긍정적인 맥락에서 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생활을 암시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어떠한 수식어로 포장하더라도 ‘혼’이라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신조어들은 고독함이나 외로움의 다른 표현에 가까울 터.

최근에는 고독사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실직자, 이혼자,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홀로 살다가 고독하게 사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언론 보도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외국에서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망 원인에 고독사가 포함하지 않는다. 통계청에서는 사람의 사망 원인을 103가지로 나눠 통계를 내고 있지만 고독사라는 항목은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독사를 ‘통계 없는 죽음’이라고 설명하는 형편이다. 외로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여러 분야의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말 못하는 외로움까지 헤아려주는 배려의 리더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 혼자(ALONE)의 인쇄광고 '창문' 편 (2016). /사진=김병희 교수

영국의 비정부기구 혼자(ALONE)에서 집행한 인쇄광고 ‘창문’ 편(2016)을 보자. 광고를 보는 순간, 양손을 붙잡고 창가에서 무덤덤하게 서있는 할머니와 커피 잔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영국 버밍햄에 있는 광고회사 수퍼드림(Superdream)의 광고 창작자들은 노인의 무표정을 극대화하며, 집밖에서 찍은 사진을 있는 그대로 광고 비주얼로 활용했다. 할머니 바로 아래에는 “외로움은 하루에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Loneliness can be as harmful to someone’s health as 15 cigarettes a day)”라는 헤드라인이 붙어있다. 영국의 조콕스고독위원회가 2017년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을 그대로 차용했다. 할아버지 사진 바로 아래에는 “외로움 살인(Loneliness kills)”이라는 섬뜩한 헤드라인을 붙였다.

▲ 에이지 영국의 페이스북 광고 '친구 없음' 편 (2015). /사진=김병희 교수

영국의 시민단체 에이지영국(AgeUK)의 소셜 미디어 광고 ‘친구 없음’ 편(2015)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되었다. 광고를 보는 순간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이 등장하고, “친구 없음(No Friends)”이라는 헤드라인이 화면 전체를 채울 정도로 부각되었다. 광고회사 제이월터톰슨(JWT)의 영국 지사에서 만든 이 광고에서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강조했다. 사진 바로 아래에 “누군가 노인들과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도록 70007에 3파운드를 기부해주세요”라는 카피를 덧붙였다. 이 캠페인에서는 외로움이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온갖 질병에 더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노인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좋은 친구나 이웃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친구를 사귀도록 설득하면서 3파운드씩 기부하도록 강조한 이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나 영국에서나 외로움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2018년 1월 1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 및 시민사회 담당 장관을 현대인의 고독 문제를 전담할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임명했다. 외로움 장관이라니, 세계 최초로 등장한 정부 부처의 낯선 이름이다. 2017년 12월에 발표된 조콕스고독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인 900만 명이 자주 혹은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그 중 20만 명은 친구나 가족과 한 달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충격을 받은 메이 총리는 외로움을 현대인의 슬픈 단면으로 인식하고, 노인, 간병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외로움(고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크라우치 장관은 정부, 공공기관, 기업, 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외로움 지수를 개발하고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기업을 비롯한 여러 공동체에서는 동료들이 느끼는 말 못할 외로움에 더 관심을 갖고 사랑을 나눠줄 필요가 있다. 혼밥, 혼술, 혼놀, 혼잠, 그 자체가 좋다는 젊은이들도 있으니 지나친 관심과 개입은 하지 말아야겠다. 홀로 사는 자유로움 자체가 즐거울 수도 있으니까. 황동규 시인은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2000)라는 시집에 실린 “버클리 시편4”의 마지막 행에서 “외로움이 홀연 홀로움으로…”라는 구절을 통해 혼자 있음을 예찬했다. 시인은 홀로움(홀로+즐거움)이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고 설명했다. 이 단어를 황동규 시인이 최초로 만들었다고들 하지만, 그 이전에도 홀로움이란 표현은 있었다. 철학자 송기득 교수가 신학자 폴 틸리히의 저서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사』(1980)를 번역하면서, 혼자 있음이 괴로우면 외로움(Loneliness)으로, 혼자 있음이 괴롭지 않고 풍요롭고 기쁘다면 홀로움(Solitude)으로 번역했다. 누가 먼저 홀로움이란 표현을 썼는지도 인정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동규 시인이 시를 통해 이 말을 대중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절체절명의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 입장에서는 홀로움이란 말을 넉넉한 사람들의 감정적 사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이제, 우리사회도 외로움 문제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일을 잘 하는 직원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갑자기 고독사하는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체계적인 정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통계청에서도 사람의 사망 원인 103가지에 고독사를 추가해 104가지 기준으로 사망 원인을 집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르신의 외로움 문제에는 가장 먼저 사랑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우리나라 231개 문화원을 총괄하는 한국문화원연합회를 중심으로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의 내용과 예산을 확대하는 것도 정부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리라. 어르신이란 단어에서 ‘어르’가 연줄이나 낚싯줄을 감는데 쓰는 얼레의 옛말이라는 점이 시사하듯, 어르신들은 아무리 세찬 바람 속에서도 어떠한 어려운 형편에서도 우리 자식들을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주셨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그분들의 외로움을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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