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7>...5월은 손 편지 쓰기 좋은 달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기업의 경영자들은 어떻게 하면 고객이나 직원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까? 시도하기에 따라 점수를 따기보다 마음 얻기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법. 우리 모두가 전자 글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늘 하는 일이라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럴 때 손 편지를 써서 보내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 같은 사랑을 느낄 것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 '황홀한 고백'은 손 편지 같은 사랑 노래다. 이 시는 '사랑한다는 말은'이라는 제목의 가톨릭 성가로도 작곡돼 널리 알려졌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그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경영자가 임직원과 고객들에게 직접 써 보낸 손 편지가 화제가 되는 이유도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사랑의 메시지에 그만큼 감동하기 때문이리라.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간편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되지만 손 편지는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오롯이 담아 사랑의 언어를 전달할 수 있다. 손 편지를 받는 사람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보낸 이의 정성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손 편지를 소재로 활용해 만든 광고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확인해보자.

▲ 호주 우정사업본부 인쇄광고 ‘연인’ 편, ‘엄마’ 편, ‘아이’ 편(2007). /사진=김병희 교수

호주 우정사업본부(Australia Post)의 인쇄광고 ‘연인’ 편(2007)에서는 한 여성이 손 편지 속에서 실루엣으로 두 팔을 뻗는 연인의 품에 안겨 기쁜 표정으로 포옹하고 있다. 남자 친구가 보내온 손 편지를 읽고 감동한 나머지 상상 속에서 그의 온기를 느끼며 껴안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카피는 짧게 단 한 줄이다. “누군가와 진정 온기를 나누고 싶다면 편지를 보내세요(If you really want to touch someone, send them a letter).” 우리 사회에서 종종 나쁜 손버릇의 뜻으로 쓰이는 터치(touch)라는 단어를 광고 카피의 묘미를 살려 ‘온기’로 번역해도 무방할 터.

이어지는 ‘엄마’ 편에서는 늙으신 엄마가 딸이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마음속으로 딸을 생각하며 딸을 안아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손 편지 사이사이로 전해오는 딸의 온기를 느끼고 있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다. 마지막의 ‘아이’ 편에서는 아빠의 팔에 안겨있는 어린이의 행복한 표정이 정겹다. 아빠는 지금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구구절절 길게도 써 보낸 모양이다. 광고회사 엠엔시 싸치 멜본(M&C Saatchi, Melbourne)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레베카 한나(Rebecca Hannah)의 창작 솜씨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티브 크로포드(Steve Crawford)의 통찰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광고다.

시리즈 광고의 첫 번째인 ‘연인’ 편은 처음에 호주 군인들이 애독하는 방위군 잡지에 게재할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잡지에 광고가 게재되자 뜻밖에도 광고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광고가 실린 잡지의 페이지를 찢어가는 사례가 늘었고, 여러 언론에서 이런 사실을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광고에 대한 호평을 확인한 호주 우정사업본부는 이 광고를 밸런타인데이에도 내보냈고, 급기야 어머니날과 어린이날에 맞춰 새 광고를 만들었다. 여러 매체에서는 광고비를 일체 받지 않고 무료로 광고를 실어주기도 했다. 자칫 식상할 수도 있었던 우체국 광고가 손 편지의 감성으로 인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셈이다.

여기에 이르러 황동규 시인의 데뷔작인 '즐거운 편지'(1958)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지금부터 60여년 전에 쓰인 시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않음을 알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계절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은 더욱 깊어져 간다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절창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의 감정, 긴 기다림마저 습관이 되어버린 그런 자세, 그런 사랑은 정녕 아름다운 사랑일까? 아픈 사랑일까?

그냥 사랑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생일날이나 고객의 기념일에 사랑의 손 편지를 써 보시기를 바란다. 손 편지가 어렵다면 카드에 짧게라도 손수 글을 써서 마음을 전하시길. 사람이란 마음을 보여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에 감동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비서를 시켜 대신 쓰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요즘 유행하는 손 편지 대행업체에 맡겨 쓰게 하면 위험하다. 위장된 손 편지를 쓸 바에는 차라리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낫다. 우리 일반인들 역시 마음이 내킬 때마다 즐거운 손 편지를 써보았으면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니 손 편지 쓰기 좋은 계절이다. “누군가와 진정 온기를 나누고 싶다면 편지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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