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 통찰력<시리즈 59>...브라질 한 광고의 교훈

▲ 김병희 교수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부드러운 카리스마",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자주 말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사람들을 부드럽게만 대하면 너무 쉽고 편한 상대로만 보거나, 항상 강하게만 대하면 상대방이 너무 어려워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면 좋겠지만 성과주의를 중시하는 경영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해야 부드럽기도 하면서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늘 강해서도 안 되고 늘 부드러워서도 안 된다. 사안의 중요성이나 경우에 알맞게 강한 감정과 부드러운 감정을 나타낼 필요가 있으리라. 광고에서도 브랜드 이미지의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지구전을 벌이다가 국지전을 전개하기도 하고, 심리전을 벌이는가 했더니 어느새 화력 무기를 앞세워 전면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외유내강(外柔內剛)을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 리츠 패션 광고를 통해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리츠 스타킹 광고 ‘군인들’ 편, ‘정치가’ 편, ‘스모 선수’ 편, ‘찰스와 다이애나’ 편 (1993). /사진=김병희 교수

브라질의 리츠(liz) 브랜드는 ‘강한 부드러움’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타이즈와 스타킹(Tights and Stockings) 광고 4편(1993)을 시리즈로 집행했다. 타이즈와 스타킹의 재질은 질기고 튼튼한 강함이지만 감촉은 매끄럽다는 부드러움을 표현했다. 지면을 위아래로 나누고 흑백과 컬러로 구별해 강함과 부드러움을 비교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상호 배치되는 의미가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자칫하면 말장난에 그칠 우려가 있는데도 리츠 시리즈 광고에서는 브랜드 이미지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조용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여성 대상의 광고인데도 주로 남자들을 등장시킨 점이 이채롭다. 여성이야말로 강한 부드러움의 소유자라는 점을 은연중에 나타내며 세상을 이끄는 주역이라는 의미도 담아냈다.

먼저 ‘군인들’ 편을 보자. 군인과 스타킹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이다. 흑백으로 처리한 상반신 부분에서는 당장이라도 적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군인들의 눈동자가 매섭다. 모두 최신식 화력 무기로 무장한 채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아래쪽을 보니 전투화를 신지 않았다. 리츠 스타킹을 신은 부드러운 차림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인가. 한 순간에 현실은 전도되고 새로운 이미지의 포물선이 소비자의 심리 타점을 때리게 된다. 동(動)과 정(靜)이 행복하게 만나는가 싶더니 흑백 톤과 컬러 톤이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한다.

‘정치가’ 편에는 1990년대에 세계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부시, 레이건, 고르바초프 대통령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정장 차림으로 세계 시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듯이 그윽한 눈길로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지면의 아래쪽을 보면 정장 차림이 아닌 부드러운 리츠 스타킹을 신고 있다. 대통령을 이렇게 희화화해도 되는 것일까? 누구라도 한번쯤은 주목할 수 있도록 중량급 모델을 활용했다. 이렇게 표현한 광고는 패션 이미지 전쟁에서 리츠를 위해 용감하게 싸워줄 전사가 된다.

‘스모 선수’ 편 역시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대단한 스타로 대우받는 스모 선수들에게 스타킹은 어울리지 않는 가당찮은 물건이다. 어른 허리보다 더 굵은 그들의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스타킹은 아마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터. 선수 두 명이 부둥켜안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용을 쓰고 있는데, 이래 쪽의 다리는 역시 리츠 스타킹이다. 결국 그들의 강함 속에도 부드러운 일면이 있고 부드러운 맛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런 이야기 형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찰스와 다이애나’ 편은 다이애나 비가 살아있을 때 만든 것인데 지금 보아도 역사적인 드라마가 느껴지는 광고이다. 유명인을 쓰되 시선이 모델 쪽으로만 집중되지 않도록 처리한 점이 이채롭다. 함께 생활하면서도 늘 불편한 관계였던 찰스 황태자 부처는 이 광고에서도 유달리 멀찍이 떨어져 있다. 광고 창작자들의 섬세한 감각의 촉수는 이런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사이에도 리츠 스타킹은 얼마든지 쓸모가 있고 그렇게 강하게만 나가지 말고 좀 부드럽게 대하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전달하려고 한다.

이상의 시리즈 광고에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광고를 집행한 다음 리츠 스타킹은 브라질 시장에서 매출액이 14%나 증가했다. 브라질의 DM9DDB 상파울로 지사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창의적인 표현 기법을 인정받아 1993년의 칸광고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션 광고에서는 감각적인 언어 구사도 중요하지만 절제된 표현도 중요하다.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로 추앙받는 독일의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Jil Sander)는 “가장 많이 표현하는 방법은 가장 적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리츠의 시리즈 광고에서는 절제된 표현을 바탕으로 매출액 증대와 광고상 수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데 성공했다.

기업 경영에서 강하게 대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부드럽게 지시해도 강하게 지시할 때보다 직원들이 일에 대한 긴장감을 더 가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부드러움을 포기하고 강함으로 일관해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모름지기 상대방의 다른 면모를 포용하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부드러움을 보여주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다만 절대로 유약하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어렵다 싶으면 유약함보다는 강한 리더십이 낫다. 다만 항상 강한 리더십만으로 조직을 이끈다면 일사분란하게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쉽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의 마음까지 얻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결국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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