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요구에 '압도적 영향력'으로 저항하던 시대는 지났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삼성생명 등 삼성의 보험계열사들이 31일 삼성전자 주식 2700만 주를 팔았다고 공시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삼성의 발표만을 간략하게 전했지만, 기사는 상당히 비중 있는 위치에 배치했다.

삼성의 이번 조치는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금산분리 관련법을 위반할 여지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삼성생명 등은 지속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에서 정한 10% 한도 이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상황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기나긴 금산법 논란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궁극의 해법은 당국이나 해당 기업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10~20년 전만 해도,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금산분리,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등의 개념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반응을 보였다.

2004년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문학진 국회의원은 “삼성이 ‘광의의 로비’를 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정치권이 삼성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하자 삼성의 고위직 직원 가운데 평소 연락 없던 학교 동창들이 수시로 밥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며, 이런 게 바로 광의의 로비라고 설명했다.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도 삼성 측의 예민한 반응은 자주 체감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의 삼성이 지금의 삼성과 같았다면, 반응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토록 격렬히 ‘저항(?)’했던 것들이 오늘날은 기업이 스스로 해결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산법 저촉 때문에 주식을 스스로 매각하는 것도 그렇다. 당시에는 법에 따른 강제매각도 재산권 침해라며 위헌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삼성의 정서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누가 강요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두고두고 속 편하게 지내는 길임을 인식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지금 정부와 성향이 다른 정권이 들어섰던 2008~2016년 금산법도 후퇴했던 기간에 보험사들은 비금융계열사 주식을 더 사들이거나 지주회사 전환과는 정반대인 순환출자를 더욱 복잡하게 했을 터인데, 삼성을 비롯한 대부분 재벌들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편언론 도입 파동 때 금산법 완화도 끼워 넣었던 당시 정권이 아무 소용도 없는 헛일을 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완화한 금산법을 다시 강화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지배구조나 금산법에 관한 논의가 색깔론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하나의 방증이다.

어떻든 오늘날에도 삼성의 보험사들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지속해서 정리해야 되는 현실은 삼성이 이전시대로부터 물려받은 묵은 숙제다.

금융시장이 요구하는 변화에 대해 ‘밥 먹고 술 먹자’는 “광의의 로비”로 저항하며 맞서다가 오늘날에도 수고를 계속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필요하게 시대적 요구에 저항하고 있는 매너리즘이 남아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돌이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주주들의 저항에도 무릅쓰고 국민연금의 도움으로 무리한 합병을 성사시켰던 삼성이다. 그 여파로 사실상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했다. 과거의 사고방식에 따른 매뉴얼을 고쳐야 할 필요성은 삼성 스스로 절감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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