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한뜻으로 일자리 창출의 묘법 찾아야

[초이스경제 정동근 기자] 일자리 문제가 최악을 넘어 극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지만 고용 지표는 악화 일로다. 5월 고용 동향은 정부의 초라한 경제 성적표의 일부다. 일자리 정부라는 구호가 무색하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취업자 증가폭이 7만 명대로 추락했다. 3개월 연속 10만 명대에 머물던 증가폭이 무너졌다. 지난 1월까지 30만 명 수준이었으니 이상 신호임에 분명하다. 실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6000명이 늘었다.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청년 실업률은 10.5%로 역대 최고치다.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는 듯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심각성을 인정하고 국민의 우려에 공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쓰일 추경 예산에 반대하던 야당은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호된 심판에 맞닥뜨려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여야 정치권은 74년 전 한 해의 이맘때쯤 1400만 명의 예고된 실업자를 앞두고 묘수를 찾는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결과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4년 6월22일 예비역보훈(G.I. Bill) 법률에 서명한다. 법안은 즉각 발효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39년 미국의 실업률은 17.2%에 달했다.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이르자 실업률은 1.2%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실업자가 쏟아질 게 뻔했다. 전쟁터의 병사와 무기 공장의 일꾼이 일자리에서 쫓겨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예정인 병사만 1400만 명이었다.

대공황에 따른 실업난이 미국 대륙 전체에 엄청난 상처를 할퀸 직후였다. 여야 정치권은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이랄까.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규모 실업 사태는 오간데 없었다. 경제는 위축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세를 이어갔다.

마법을 부린 것이 바로 예비역보훈 법률이다. 법안의 뼈대는 예비역 군인에 대한 광범위한 국가의 지원이었다. 예비역이 대학에 진학할 경우 교육비와 주거비용을 지원하고 졸업한 뒤에도 주택 마련 자금을 보조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돈을 쏟아 붓자는 것이었다.

효과는 어땠을까. 군복을 벗은 780만 명의 예비역이 학비 걱정 없이 대학에 들어갔다. 학자금에 주택 자금까지 지원받은 예비역을 더하면 1040만 명에 이른다. 예비역의 노동 시장 복귀가 늦춰져 국민경제 전체가 일자리를 만들 여유 공간이 마련됐다는데 의의가 있다.

▲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사진=뉴시스

나아가 미국 경제 전체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는다. 정부 보조로 학비와 주택을 마련한 젊은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정을 꾸렸다. 전후 출산으로 태어난 베이버부머 세대는 경제성장의 발판이 됐다.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맨 마지막 부분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전역한 이지중대 대원은 대학에 진학하고 집을 산다. 대학 수준이 떨어진다는 악평 속에도 혜택을 받은 예비역들은 이후 탄탄한 중산층으로 자리 잡아 1950~60년대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소외됐던 흑인이 대거 대학에 진학해 백인 사회와 격차를 좁힌 것도 영향의 한 줄기였다.

현대 경영학의 거두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는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수월하게 지식 기반 사회로 진입한 것은 예비역보훈 법률의 엄청난 역할 덕분이었다”고 평가한다. 경제사학자 존 스틸 고든도 ‘부의 제국-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나’에서 “예비역보훈 법률이 탈산업 경제를 주도하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의도치 않은 파급력은 주거 문화로도 한 줄기 빛을 비췄다. 2차 세계대전 참전 예비역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무렵 미국은 교외의 중저가 주택이 일대 유행이었다. 도심 외곽 대지 150평의 주택 평균 가격이 4인 가족 연평균 소득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예비역은 정부에서 다시 지원을 받아 이를 구매했다.

도시의 상자 꼴 방구석에서 나고 자라 일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미국 전후 세대는 마당과 조그만 채소밭이 딸린 교외 주택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주거 양식 변화는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과 맞물리며 자동차 제조업체의 폭발적 내수 증가라는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

예비역보훈 법률은 한국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후 개정된 법률은 한국전과 월남전, 걸프전에서 제대한 예비역도 군부대를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를 위해 피땀 흘린 군인이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격주간 경제매체 포천은 2013년 7월자에 ‘미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100가지’ 설문조사 결과 예비역보훈 법률이 6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일개 법률에 대한 자부심이 이 정도라니. 우리는 쉽사리 상상을 할 수 없는 역사를 미국인들은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배울 점은 없을까. 법률 집행 과정에서 보이는 어마어마한 예산 들이붓기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불가능할 듯하다. 다만 국가적 재난을 앞두고 정치권이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최선의 원칙을 도출해 이를 실제로 적용했다는 사실에는 눈길을 줄 만하다. 값진 역사적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개인과 집단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간혹 바보 같은 경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바닥 경쟁(Race to Bottom)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사례다. 새 정부 들어 야권은 바닥 경쟁에 매몰됐던 탓에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차디찬 외면을 받았다. 일자리 문제만큼은 정치권 모두가 전력으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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