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에서 "재계 두둔한다"던 사람의 돌발 한마디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삼성 20조’ 발언은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자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초래했다.

이 뉴스를 자신의 페이스북 담장에 거는 페이스북 친구도 몇 사람 나타났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사실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은 상당수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철렁’하는 뉴스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일 좀 하려고 하면 영웅 심리에 사로잡힌 누군가의 헛발질로 수렁에 빠진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반면 민주당 비판자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같이 반갑기까지 하다.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파가 몰락하다시피 참패하고 여전히 앞날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 압승을 거둔 반대정파가 스스로 헛발질을 한 것은 ‘리빌딩’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판적 국민들이 홍 원내대표의 실언을 반가워(?)하는 것은 이런 발상이 절대로 실현될 리가 없다는 확신도 있기 때문이다.

일개 기업에서 20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징수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무소불위 권력이다. 헌법도 마음대로 고쳐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연 몇몇 절대 권력자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처리조차 갈팡질팡하는 현 집권여당을 봐서는 20조 아니라 20만원도 청문회 두려워 꿈도 못 꿀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정말로 삼성으로부터 많은 돈을 압수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비판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홍영표는 실언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걸 아직도 실언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언론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긴급회담을 제안했다가 취소했을 때 해명의 두 배는 훨씬 넘을 정도로 길다. 추 대표의 해명문도 별로 짧지는 않은 글이었다.

홍 원내대표는 “삼성 돈 20조를 200만 명에게 나눠주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아니었다”며 “200만 명에게 1000만 원 정도의 혜택이 돌아갈 정도로 큰돈이라는 점을 예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굳이 삼성 20조를 거론한 것에 대해 그는 “평소 갖고 있던 의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2015~2017년 3년간 삼성은 약 20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했고 소각했다”며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일은 불법이 아니지만 후계 승계에 활용되거나 기존 주주의 이익에 봉사할 뿐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효과는 크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몇몇 재벌에 갇혀있는 자본을 가계로, 국민경제의 선순환구조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홍 원내대표에게는 “주식회사가 주주들 권익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를 묻고 싶다.

재벌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일이라면, 본지 역시 창간 이래 한시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고 자평한다. 창간 때부터 ‘경제지는 무조건 재벌 옹호를 해야 되는가’라는 비판의식을 놓은 적이 없고 이는 본지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비판은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저해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에 대해서다. 정상적 기업 활동까지 재벌이라고 무조건 욕먹어야 할 일이 아니다.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은 어느 기업이나 주주들 권익을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이다. 상장사가 자기 주주를 위해 쓰는 돈인데, 정부가 끼어들어 “그 돈을 너희 주주가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해 쓰자”라고 하는 발상은 민주당의 고질적 약점인 ‘색깔론’을 자극할만한 모든 토양조건을 갖춘 것이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억울하다고 하는 심정에는 다른 맥락도 있지 않나 추측한다.
 

▲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오른쪽). /사진=뉴시스.


민주당은 늘 반성할 때도 말이 길다

최근의 최저임금 논란에서 홍 원내대표는 비교적 재계 입장을 존중하는 집권당내 인사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당의 강성 진보성향 지지자들로부터는 강한 비난을 사고 있다.

재계를 위해 험한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자신이니 한마디 쓴 소리도 좀 할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이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또한 그렇게 바람직스런 위정의 마음가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요즘엔, 스스로 정부와 재계 사이 ‘비공식 채널’을 자처하면서 ‘갑질’하려는 의도로 오해받을 소지가 더 크다.

무엇보다 추미애 반성문을 압도하는 홍영표 해명문에는 민주당이 자유한국당보다 못한 면이 하나 드러난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물의를 빚고 나면 이유 불문하고 머리를 숙인다. “본인의 불찰”과 같은 상투적이고 짧은 해명으로 끝낸다. 별로 와 닿지 않는 반성문이지만 국민들은 ‘이러면 큰일 난다는 건 배웠겠거니’라는 생각으로 넘어간다. 똑같은 짓을 실제로 다시 하는지 안하는지와는 별개인 국민 정서적 문제다.

민주당은 이와 다르다. 항상 반성을 할 때도 말이 길다. 반성문에 여러 가지 유식한 개념도 많이 들어간다.

이런 반성문이 유발하는 반응은 두 가지다. 첫째는 “그래서 그런 짓을 또 할 거야 말거야”라는 가장 결정적인 의문이다. 이것 때문에 사태 마무리가 쉽게 되지 않는다.

두 번째 반응은 “여전히 우리를 무식한 국민으로 여기고 계도하려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지자 놀이’의 습성을 여전히 못 벗어난다. 그런데 이 선지자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검증을 받았는지를 의심받고 있다.

사실, 민주당에 대한 ‘색깔론’ 공격을 독재세력이 남긴 죄악으로 간주하는 입장에서는 민주당 사람들의 ‘선지자 놀이’가 더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등장한 몇몇 자치단체장들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지자 놀이에 빠져서 충분치도 않은 지식으로 무조건 국민을 계도하려는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이번 여름 농촌봉사활동을 가 볼 것을 제안한다. 평범한 농촌봉사가 아니라 1980년대 전두환 시대 대학생들의 ‘농활’ 방식이다.

이 때 농활대는 매일 활동이 끝나면 저녁에 규율을 어긴 것이 없는지 마무리 회의를 가졌다. 규율 중에는 농민들 앞에서 계몽가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었다. 농담 한마디 속에라도 ‘지적 우월감’을 드러냈다면 그날 저녁 정말 세상에 대해 무지한 것은 자기자신임을 되새기고 그날 일과를 마무리했다.

폭압적 독재정권에 맞서 목숨걸고 싸운 사람들이 세상부터 배우려고 간 자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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