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노골적 연준 간섭, 한국은행-기획재정부가 배울 일인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의 통화정책을 비판할 때 단골로 지적되는 건 중앙은행의 독립과 정권의 간섭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는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다. 앞으로 남은 기간을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이전 정권에서는 예외 없이 정권 또는 정부 관계자들에 의한 중앙은행 독립시비가 발생했다. 특히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을 “그거 참 좋은 정책”이라며 독려한 것은 대단히 심각한 중앙은행 독립 훼손이었다. 한국은행이 이 요구에 굴복했기 때문에 심각성이 더 했다. 이 뿐만 아니다. 당시 집권당의 대표를 맡는 사람마다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요했다. ‘빚내서 집사라’ 정책의 공범(?)에는 당시 경제부총리 뿐만 아니라 이때의 집권당 인사들도 포함된다.

한은의 독립성이 무너질 때마다, 기자들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를 했다.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원시적 행태가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개탄을 했다.

이같은 논리근거를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가 좋아질 때마다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가 금리를 올린다”고 불평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 뉴시스.


대단히 ‘죄질’이 나쁜 금리간섭 발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와 비교해서 비판할 수도 없다. 통화정책의 본산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슨 일만 있을 때마다 미국과 비교하던 기자들 다 어디 갔냐는 한국의 몇몇 재무부 관계자들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단단히 고무된 기획재정부 인사가 있다면, 진지하게 묻고자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놓고 한국은행 통화정책에 간섭할 것인가?”

트럼프 흉내를 내서 뭔가 기대했던 정책효과를 낼 자신은 있느냐다.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트럼프 본인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얘기가 많다.

좀 궁색한 얘기로 들릴 소지는 있다. 전후관계를 좀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렇다.

금리간섭을 하기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을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고령의 여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노출해 또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국제 정치외교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90세를 넘긴 노인이라는 점. 두 번째는 의회민주주의 ‘본가’ 영국의 임금이란 점이다.

전자가 인지상정의 공경심을 유발한다면, 후자는 최상위 선진국의 고귀한 혈통이라는 권위를 상징한다. 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에게 좀 문제가 된다.

그에게 실익과 무관하게 남아있는 권위로 보이는 것들은 ‘나 그런 거 못 배운 사람이다’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그가 자신의 사업, 지금은 정치를 하는 전략으로 쓰이는 듯하다.

근거를 상실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싶은 미국인들의 욕구에 의해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런 권위타파의 대상이 이번에는 Fed가 된 것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Fed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참으로 뻔한 치고빠지기다. 무엇보다 장관이 실언한 것을 대통령이 해명한다면 모를까, 대통령의 실언을 장관이 해명하고 있다.

누가 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어쩌면 금리를 올리는 그 자체가 불만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은 영국 여왕 앞에 19세기 식 경의를 표해야 하고, FOMC 위원은 땅장사꾼으로서는 헤아리기도 힘든 시장의 권위가 있다는 ‘그들만의 논리’가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기성사회를 트럼프스런 언동으로 뒤흔들어 놓으면, 확실히 세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옳게 살아온 건가’를 다시 돌이켜보기는 한다.

미국인들은 그동안 러시아나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과시하는 대통령을 신뢰했었다. 그런 대통령들은 오랜 동맹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모이는 G7에 가서 큰 집 노릇을 하면서 미국의 권위를 더욱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차 뒤흔들고 있다. G7에 가서 고상한 식사를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역불균형이고 잃은 것은 당신들의 일자리라는 그의 주장에 미국인들이 ‘일단 믿고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Fed를 뒤흔들고 있는 것도 이처럼 미국인들의 기대를 가져올 지는 두고 볼 일이다. Fed에 관계된 시장의 관습은 영국여왕에 대한 의전전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시장관습은 누군가의 권위로 만든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손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랜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좀 더 공정한 쪽으로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Fed에 대해서는 좀 더 조심해야 됨을 깨달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시장의 절대선으로 믿었던 관습 역시 헛된 Fed의 권위였을 뿐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때까지는 한국에서도 어설프게 트럼프 흉내를 내려는 사람들이 절대 자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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