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빅2,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거부 후폭풍
금감원, 계약자 분쟁신청 유도 · 약관검사 강화 응수

▲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왼쪽)과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 /사진=각사 제공

[초이스경제 임민희 기자] 생명보험사와 금융감독원 간 '즉시연금(만기환급형) 미지급금 일괄지급' 공방이 장기전에 돌입했다. 특히 생명보험업계 '빅2'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총대를 메고 금감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이제는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결국 이 대결의 결과에 따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대표) 중 누군가는 상당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소비자보호'라는 강력한 명분을 내건 윤석헌 원장에 맞서 현성철 사장과 차남규 부회장이 계속해서 대척점을 세울지, 아니면 타협안을 제시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을 거부한데 이어 한화생명도 지난 9일 즉시연금 미지급금 관련 '불수용 의견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는 지난 6월 제기된 한화생명 즉시연금 미지급금 민원과 관련해 지급결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한화생명은 외부 법률자문 결과 약관에 대한 법리적이고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며 이를 거부한 것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지난 6월 12일 제기된 분쟁조정 1건에 대해서만 불수용 의견서를 낸 것"이라며 "향후 즉시연금에 대한 법리적인 논쟁이 해소되고 유형별로 정리가 되면 동종 유형의 계약자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괄지급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한화생명 측은 삼성생명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생명이 보험금을 일시에 내고 다음 달부터 연금을 받는 즉시연금 1종류만 있는 반면 한화생명은 이 상품 외에도 5년 또는 10년 거치식 상품 등 유형이 다양해 약관별로 법리적인 해석이 각각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한화생명의 분조위 조정 거부와 관련해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삼성생명이 지난해 11월 분조위의 즉시연금 지급권고안을 수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이 분조위 권고안을 수용했다가 '일괄지급' 논란을 자초한 만큼 한화생명이 애초부터 이런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게 아니냐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만기환급형(상속형) 즉시연금'은 보험계약자가 보험료 전액을 일시 납입하고 매월 연금을 받다가 만기가 되면 보험료 원금을 모두 돌려받는 상품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각각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을 상대로 제기된 분쟁건에 대해 약관상 '연금지급시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민원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3월에는 전 생보사에 미지급된 즉시연금을 모든 계약자에게 지급(일괄적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즉시연금을 미지급한 생보사는 20개사로 삼성생명 약 4300억원(약 5만5000건), 한화생명 약 850억원(약 2만5000건), 교보생명 약 700억원(약 1만5000건) 등 약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거쳐  "법원의 판단에 따라 즉시연금 일괄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소송전을 택했다. 다만 최초 민원인의 사례를 적용해 가입설계서 상의 최저보증이율 2.5%를 적용한 일부 금액만 돌려주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하면 370억원 가량이 나온다"며 "이달말까지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외에 나머지 생보사들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다 직접적으로 즉시연금 민원이 제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괄지급 거부에 동조했다가 괜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하고 있다.

금감원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반기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일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 거부에 대해 "소비자의 불이익이 없도록 감독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원장은 이달 1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와 24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조찬간담회를 열고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이달 말부터 홈페이지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접수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연금가입자의 분쟁조정 신청을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또 금감원 1층 금융민원센터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전담 창구를 마련해 분쟁조정 신청과 소멸시효 중단요청서도 받을 예정이다. 이는 즉시연금 사태가 소송전으로 갈 경우를 대비해 보험금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현재 금감원에 접수된 즉시연금 관련 민원은 80여건으로 이중 50여건이 삼성생명 민원이다. 향후 보험사 검사시 금감원이 상품약관의 위법성 등을 집중 들여다볼 거란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즉시연금 사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생보사에겐 전혀 이득이 될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해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데다 올해 즉시연금 미지급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려는 '악덕보험사'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두 보험사는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로 금감원과 갈등을 빚다 결국 중징계를 앞두고 '전액지급'으로 한발 물러서 거센 비판을 샀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도 즉시연금 관련 공동소송을 준비 중이다. 금소연 측은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즉시연금' 일괄지급 지시를 거부하고 소송제기로 간 것은 우리나라에 아직 집단소송이나 단체소송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은 점을 악용한 것"이라며 "특히 장기간 소송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지급금이 줄어들 것을 노리고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생보사들이 향후 즉시연금 계약자와의 소송에서 설령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는 쓴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과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이 즉시연금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들고 나올지도 주목된다. 현성철 사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주가변동 등으로 경영입지가 주목받는 상태다. 7년간 한화생명 수장자리를 지켜온 차남규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부회장에 승진하며 탄탄대로의 행보를 보여왔지만 2년째 소비자 관련 불미스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리더십의 중대 기로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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