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위생처럼 철저한 은행체계의 건전성이 필요한 이유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은산분리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히 쓰인 것은 10년이 안된다. 그 전에는 이보다 포괄적 단어인 금산분리가 자주 쓰였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차단벽을 지키는 것이 금산분리다. 관련법으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즉 금산법이 있다.

은산분리는 이보다 범위를 좁혀서 재벌의 은행소유를 차단하고 있다. 관련법은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이다.

금산분리와 은산분리의 가장 큰 차이점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금산분리는 시장의 정의와 도덕성, 은산분리는 금융경제체제의 안전을 중시한다.

금산분리는 은행 뿐만 아니라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업종에 적용된다. 이 법의 핵심내용은 증권사나 보험사에 고객이 맡긴 돈을 이 회사 사주가 자기 돈처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험사를 가진 재벌회장이 고객들의 보험료로 자기 경영권을 방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재벌회장의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면, 회장은 자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경영권을 차지하게 된다. 금산법은 이를 막고 있다.

재계를 중심으로 금산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다. 고객도 그 돈으로 경영권 방어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이 삼성계열사여서 더 믿고 보험가입을 한 것이니 이건희 회장의 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이 더욱 튼튼해지는 게 고객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적으로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시장경제의 원칙에는 명백히 어긋난다.

어떻든 금산분리는 이처럼 시장의 공정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한다.

금융회사 가운데 특히 은행과 재벌의 차단벽을 중시하는 은산분리 역시 도덕성 문제가 결부돼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정성, 도덕성보다 훨씬 더 중요한 취지는 국가 경제의 안전이다.

이는 은행이 증권, 보험 등 다른 금융기관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데서 기인한다. 즉, 은행의 신용창출, 통화팽창 기능이 사리사욕 때문에 부정하게 쓰이다가 엄청난 경제 재난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스위스에서는 은행의 통화팽창 기능을 없애자는 주민발의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민투표까지 실시됐다. 시중은행을 통해서 통화량이 증가되는 것을 막고, 필요한 돈은 오로지 중앙은행에 의해서만 발행되게 하자는 것이다. 워낙 과격한 내용이어서 당초 예상대로 부결됐다.

만약 이런 제도가 실시되면, 은산분리 논쟁은 그대로 사라진다. 은행이 다른 금융기관과 전혀 다를 것 없어서 은행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은행이 없어지니 은산분리 논쟁도 있을 수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맨 왼쪽), 박원순 서울시장(맨 오른쪽)과 함께 인터넷은행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일종의 ‘뻥튀기’와 같은 은행만의 고유기능을 통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통화를 창출한다. 시중에서는 본원통화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쓰일 수 있는 돈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만의 고유한 기능이다.

만약 은행이 잘못돼서 거덜 나면, 그 나라는 중앙은행이 발행하지도 않은 돈까지 빚더미에 끌어안게 된다. 끔찍한 일이다. 대형은행 하나의 부실이면 오늘날 전 세계 10위권 국가하나를 날릴 수도 있다.

철저한 안전이 필요한 이런 속성으로 인해, 은행체계는 경제의 혈관에 비유된다. 신체에 혈액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듯 필요한 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혈관처럼 철저한 위생이 유지돼야 하는 것이 은행이다.

겉보기에는 우람한 근육이 멋져 보이고, 혈액은 무섭고 징그럽기도 하지만, 근육은 표면에 많은 세균이 머물러있다. 혈관에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안전에 은행의 건전성이 절실한 이치와 같다.

지금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제일 왜소해졌을 때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다. 국회 의석이 개헌저지선도 안되는 4분의1 수준으로 추락했었다. 이때도 민주당을 떠나지 않았던 핵심 지지층의 하나가 바로 이 은산분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정책들에 대해 “대운하는 파놓은 땅을 나중에 다시 메우기라도 하지만, 재벌들 돈놀이로 은행이 거덜 나고 나라가 망하면 되돌릴 길도 없다”며 민주당을 지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가장 어려운 때도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제일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도전하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인터넷은행만의 은산분리 완화가 과연 현행 4% 지분제한을 공무원들 요구대로 30%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줄 건지, 그리고 인터넷은행이 자생력을 다 갖춘 뒤에는 후퇴한 원칙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설명이 필요한 건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층 뿐만 아니다. 이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경제안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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