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식으론 "재벌회장도 안나오는 국회, 외국인 사장은 왔다" 면죄부 소지만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가 국정감사에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을 출석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카젬 사장을 10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카젬 사장은 법원의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산자위는 오는 29일 종합감사에 카젬 사장을 다시 부르겠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사장이 한국의 국회마저 무시하겠다는 듯한 모습이 한국GM에 대한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만약 카젬 사장이 국회에 출석한다면, 국회는 한국GM의 철수의혹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히려 그의 출석이 GM측에 ‘해야 할 도리는 다했다’는 면죄부용으로 쓰일 소지가 크다.

카젬 사장이 무턱대고 국회 출석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는 그가 출석했었다. 그러나 그의 출석으로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은 올해 반복되는 한국GM 논란이 입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문대답 과정이 아무런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2016년 국회가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블랙리스트 관련 시인을 이끌어낸 것과 같은 국회의원들의 ‘질문 신공’은 기대할 수도 없다.
 

▲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통역사의 통역을 듣고 있다. /사진=장경순 기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말을 못하는 카젬 사장은 통역사와 함께 출석했다. 의원들이 질문을 하면 이를 통역사가 해석을 하고, 카젬 사장이 답변을 하면 통역사가 다시 이를 통역해서 의사록에 담는 방식이었다.

통상적인 문답보다 두 배로 늘어난 절차를 거치는 동안 회의장은 특히 차분하게 착 가라앉아있었다. 증인의 답변 도중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발언을 제지하는 경우는 생각도 하기 힘들었다.

의원들의 질문마다 카젬 사장 답변이 끝나고 나면 통역사는 “존경하는 의원님, 한국GM은 한국의 이러이러한 규정을 존중하고 국회의 관심에 감사하고”와 같은 ‘덕담(?)’을 반복했다.

당시 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진복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앞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할 때는 사전에 질문서를 보내서 답변서를 받은 후 그에 따라 진행해야 할 것 같다”며 “카젬 사장 한 명으로 인해 오후 회의시간 50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마저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때는 통역사의 발언시간까지 해당 의원의 질문에 포함했었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이 올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출석을 시도하다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됐다. 정의선 부회장뿐만 아니라 해마다 국회는 재벌그룹 총수일가의 출석을 시도하는데 여의치 않은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알맹이도 없이 카젬 사장이 출석한다면, “재벌회장들보다는 떳떳하다”라는 동정심이나 면죄부만 챙겨줄 소지가 있다.

따라서 국회가 진짜 필요에 의해 카젬 사장 출석을 추진한다면, 지난해 사례를 거울삼아 회의진행 방식을 손질해야 한다.

의원들이 동일한 질문을 반복해봐야, 카젬 사장의 통역사가 “존경하는 의원님, 한국GM에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드리고”와 같은 덕담만 의원 숫자만큼 반복될 것이 확실하다.

현재 한국GM 논란은 여당과 야당의 입장 차이를 찾기 힘든 초당적 주제가 됐다. 여야의원들이 앞선 의원의 질의응답을 충분히 참고해 자신의 질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불가피하게 앞선 의원 질의 때 회의장을 비우더라도 보좌진을 통해서 회의진행을 모두 파악한 뒤 질문에 나서야 할 것으로 요구된다.

덮어놓고 질문하는 모습만 과시하려다가는, 재벌 회장도 안 나오는 국회에 외국인 사장은 나오더라는 뜻밖의 결과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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