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선 투자활성화 발표 vs 다른 쪽선 내부거래 늘려 '빈축'

▲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칼럼] 지난 10일 또 다시 민낯을 드러낸 한국 재벌의 두 얼굴을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이날 글로벌 투자기관 중 한 곳인 CLSA는 한국 대기업의 변화상을 전하면서 “SK, LG, GS, 한화, 코오롱, LS 등 주요 재벌이 정부의 내부거래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최종 승인되기 전에 적극적인 선제대응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려 눈길을 끌었다.

CLSA는 ▲SK의 해운지분 매각 추진 ▲LG의 서브원 분할 및 매각 추진 ▲GS, LS, 한화, 코오롱의 합병 또는 직접적인 지분 매각 추진 등을 새 규제에 대한 선제대응의 대표사례로 꼽았다. 이어 “삼성과 현대차의 새로운 퍼즐 맞추기도 관심을 끌 것”이라고 했다.

한국 재벌들이 정부의 새로운 정책 시행을 앞두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필자도 모처럼 “이제 우리의 재벌들도 정도경영을 하려나 보다”하는 기대감을 가져봤다. “우리의 재벌들도 변하는 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최근들어 신동빈 롯데 회장이 2심에서 석방 되는 등 현 정부 들어 재벌들이 대형 악재에서 벗어나더니 이제는 재벌들이 우리 경제의 공정거래를 위해 화답하는구나 하는 순진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최근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한화그룹, 포스코 등이 문재인 정부의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재벌들의 경제살리기 투자계획이 잇따라 발표된 가운데 주요 재벌의 새 내부거래 제도에 대한 선제적 대응 소식까지 접하고 나니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충동도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조금 뒤 다른 한쪽에서는 재벌들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뉴스가 터졌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등에 따르면 자산 규모가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60개 기업 집단의 내부 거래 금액이 지난해 모두 191조 4000억원에 달했다는 뉴스가 이 글을 쓰는 기자를 포함, 많은 국민들을 또 한 번 실망시켰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 전체 매출 가운데 내부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1.9%에 이른다고 했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은 2016년 122조 3000억 원에서 지난해엔 142조 원으로 20조 원 가까이나 늘었다고 했다. 내부 거래 비중도 2016년 12.9%에서 지난해엔 13.7%로 0.8%포인트 높아졌다고 했다. 재벌 총수가 있는 기업일수록 내부거래가 더 횡행했다고 했다. 비상장 기업에서 더 많이 횡행했다고 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으니 현정부들어서도 그 잘난 한국의 재벌들은 내부거래에 혈안이 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 새로운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왜 CLSA가 우리의 재벌들이 그토록 선제대응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는지 그 진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문재인 정부들어 기업들은 겉으로는 정부의 재벌개혁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공정거래확립’ 의지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각 재벌이 수십조원, 많게는 200조원 가까운 대규모 투자계획, 일자리 마련 대책을 발표할 때 만 해도 이같은 꼼수는 없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재벌에 대한 호의적인 기대는 한 순간 사라졌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문재인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투자활성화, 일자리창출에 너도나도 앞장서는 듯 했던 재벌들이 뒤에서는 여전히 내부거래를 일삼는 등 딴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겉과 속이 다른 게 한국의 재벌들이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들은 한쪽에서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과시하고 속으로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게 바로 재벌들의 민낯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배신감을 뿌리칠 수 없다. 최근 한국의 사법부가, 그리고 국회가 재벌들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재벌들은 아직도 두 얼굴을 갖고, 국민과 정부를 대하는지 그것이 원망스러웠다.

최근 국회 정무위는 재벌 회장들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는 것을 배제했다. 올들어서도 사법부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서인지 수감 중인 재벌 총수들을 잇달아 풀어줬다. 때로는 대통령까지 나서 재벌들에게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어깨를 두들겨 줬다.

그러나 그 재벌들은 이중적이었다. 공정위가 새로운 내부거래 규제 방안을 시행한다고 하니까 최근 들어서야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모습을 보니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의 할 일이 참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재벌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의 사법부는 계속 재벌 총수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한국의 국회가 재벌 총수들 한테는 만사 제치고 국정감사 증인에서도 빼주는 일이 계속돼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묻고 싶다.

마침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으로 새 제도를 통해 부당한 내부 거래가 있을 경우 엄정히 조치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지난 8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을 지분율 20%로 일원화하고 자회사까지 포함시키는 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이들 새로운 규정을 제대로 가동해 공정거래를 하지 않는 재벌들에겐 그만한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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