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설립 당시 우려 표출 속 다시 모피아 낙하산 터 정착?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투자공사(KIC) 설립논의가 국회에서 한창이던 2005년, 당시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현 정의당 의원)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실 야당석의 10분의9 쯤 되는 지점을 손으로 그으면서 “여기까지는 이미 다 찬성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의 손짓에서 찬성에 포함되지 않은 반대 의원은 사실상 심 의원 한 사람의 ‘필마단기’였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이던 이 때 여당은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고, 제1 야당은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KIC 설립엔 반대를 하지 않아 이미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비교섭단체 소속인 김효석 새천년민주당 의원과 무소속 신국환 의원도 찬성 분위기가 역력했다.

때마침, 재경위가 일정 조정을 하던 자투리 시간에 휴게실에서는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현재 4선), 김효석, 심상정 의원 세 사람간의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 세 사람은 이 때 재경위에서 상당히 안목이 있는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이 때 초선이었던 박 의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문제를 연이어 지적하고 있었고, 김효석 의원은 대통령과 당적이 다르면서도 교육부총리 제의를 받기도 했다.

사모펀드(PEF) 법을 제정할 때 박영선 의원이 여당 내에서 한동안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고 이를 법안에 반영해 준 기억을 살려, 심 의원은 그에게 “유일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 아니냐”며 KIC 비판에도 동참하기를 희망했다. 박 의원은 “정부가 마련한 법안 내용을 자세히 보면 어느 정도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며 KIC만큼은 당정과 별로 맞설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여당이 아니라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주도로 추진된 KIC 설립의 명분은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운용을 위해 외국투자기관을 찾을 것이 아니라, 국내에 전문기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관료들의 ‘낙하산용’으로 악용될 것을 경계하는 우려가 많았다.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들, 즉 ‘모피아’들의 퇴직 후 보금자리로 만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왼쪽)과 전 사장인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오른쪽)이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낙하산 우려 때문인지 KIC의 초대, 2대 사장은 민간금융인사가 선임됐다. 이강원, 홍석주 전 사장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경력에서는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이강원 전 사장은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될 당시 행장이다. 홍석주 전 사장은 조흥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될 때 행장이다. KIC 취지에 적합한 사장을 데려온 게 아니라, 합병에 순응한데 대한 보은인사라는 비난이 초대, 2대 사장인사에 지속됐다. 공사를 경영하는데 전념해야 할 판에 다른 은행 합병문제로 사장이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처지가 됐다.

3대에 이르러 기획재정부 출신 진영욱 사장이 부임했다가 산업은행에서 분리된 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옮겼다. 정책금융공사는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자마자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산업은행과 합쳐졌다.

4대는 하나은행 임원을 지낸 최종석 사장이 부임했다. 은행 임원 때부터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자제로도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업무평가 성적이 좋지 못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직원들의 보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5대는 다시 기획재정부 출신 안홍철 사장이 맡았다. 그런데 ‘모피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가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친 비방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업무평가 방식을 편법으로 바꿔 연봉 4억원을 받는 자신에게 1억60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문제까지 겹쳤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안 사장과 나란히 앉은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전혀 그를 두둔하지 않고 “KIC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안 할려면 안하든가”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KIC 해산론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6대 은성수 사장과 최희남 현 사장은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안 전 사장처럼 KIC 업무와 무관한 정치문제로 시비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역대 사장들이 다양한 문제들을 몰고 오다 보니 어느새 KIC는 ‘모피아’들이 3회 연속으로 안심하고 착륙하는 또 하나의 낙하산 터가 돼 있다.

올해 KIC의 국정감사는 예년과 비교하면 무난한 편에 속한다. 일부 의원이 ‘모피아 낙하산’을 지적하기는 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그런데 바로 심 의원이 벌인 재정정보 유출 소동으로 인해 KIC에 대한 감사가 뒷전으로 밀렸다. 예년보다 순탄한 국정감사가 된 이유다.

지금까지 7명의 KIC 사장 가운데 과연 누가 당초 취지대로 외환보유액의 운영수익을 제대로 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살펴보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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