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국은행 국정감사에 남긴 아쉬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닭 잡는 데 쓴다’는 말이 있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쓰는 칼은 이만저만한 칼이 아니다. 단순히 식탁에 오를 소만 잡아서도 성에 안찬다. 같은 소라도 컴퓨터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울트랄리스크와 같은 무시무시한 맹수를 퇴치하는데 써야 제격인 그런 칼이다.

그동안 전문성 면에서 우수함을 과시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22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는 이런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한은 총재나 부총재, 또는 금융통화위원과 같은 정무적 성격을 가진 직위의 인사들에게 한 점 의혹 남기지 않게 사실을 밝히라고 국정감사권의 커다란 칼이 주어졌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전 국회부의장이기도 하다. 지난 5월까지 국가의 3부요인에 준하는 지위를 가졌다.

심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질문을 하다 한은의 국장 한 사람을 발언대로 불러내 자료를 요구했다. 국장의 답변이 성에 차지 않은 듯 그는 갑자기 “궤변 늘어놓지 마십시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날따라 그는 ‘지식인’의 도리를 강조하면서 국장에게 “코드나 맞추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심 의원의 옆자리에서는 “코드도 맞춰야지”라는 조롱성 추임새도 들렸다.

그는 또 “지식인으로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라는 일갈도 했다. 역시 해당국장에게 향한 것이다. 기재위 회의실 안팎에서는 이 국장보다 하위직인 수 십 명의 한은 직원들이 현장에서, 또는 모니터를 통해 이 상황을 지켜봤다.

심 의원이 한은 보고서에 대해 못 마땅해 국민을 대신해 일갈을 하고 싶다면, 무려 7명이나 이름표를 달고 앞줄에 앉아있는 사람 누구든 불러낼 수 있었다. 총재와 부총재, 금통위원들이다. 여기다 한은의 집행간부인 부총재보들도 출석해 있었다.

심 의원은 굳이 이런 사람을 놔두고 뒷줄의 국장을 불러내 자료를 만들 계획이 있냐없냐도 따졌다. 이 국장의 부서에서 만드는 자료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혹시 총재 부총재 금통위원이 만만치 않으니 실무선의 국장을 불러낸 것이라면 칼을 잘못 써도 참 잘못 쓴 것이다. 휘두르는 칼이 제자리를 못 찾으면 검객의 위신만 실추된다.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일형 조동철 고승범 신인석 임지원 위원. /사진=장경순 기자.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은행 사택제도의 과도한 혜택을 추궁했다. 주로 30대 후반의 무주택 한은 직원들이 최대 9년 동안 주택을 제공받는 것으로, 1990년대의 5000만원 전세금 지원제도가 폐지되면서 대안으로 생긴 것이다. 한은은 다른 공공금융기관의 제도와 비슷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이유든, 무자본법인인 한은이 돈을 쓰는 일이라면, 기본적으로 새로 돈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역시 헛된 지출을 막아야 되는 도리는 당연하다.

조 의원의 질문은 음성과 말투에서부터 설명을 한번 듣자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걸 이대로 계속 유지할 것이냐”며 상당히 가시 돋친 기세가 역력했다. 이날의 회의장 공기는 국회의사록만으로 알아챌 수 없는 것이었다.

조정식 의원은 2017년 등원한 개혁성향 의원으로 여당의 이른바 ‘코드’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다. 특히 그는 17대 국회 이후, 민주당의 당세가 크게 약화됐던 시기에도 수도권 지역구를 놓친 적 없이 현재 4선에 이르고 있다.

비교적 정치색이 약한 기재위의 피감기관들로선 그를 대하는 일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 의원 본인은 순수히 의혹을 파고든다고 해도, 한국은행 직원들로서는 당정의 핵심인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이날처럼 노기를 띤 음성으로 총재를 다그치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한은의 과장급 이하 직원들은 ‘순도’높은 개혁 정치인 앞에 ‘죄인’의 처지가 된다.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저금리를 고집하는 금통위원들의 주요 거주지가 어딘지 까지 밝히려다가 자제했다고 하는데, 조정식 의원은 집 없는 중앙은행 직원들의 사택을 서릿발같은 어조로 파고들었다.

기재위의 이날 회의 모습은 차분함과 전문성을 자랑하던 예전의 명성에서 크게 멀어졌다.

한 의원은 “비상근직 금통위원의 연봉이 왜 3억 원이나 되느냐”며 따졌다. 이 의원의 지적과 달리 금통위원은 현재 상근직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국립대 교수는 아무리 전문성이 높아도 교수직을 유지하는 한 금통위원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재위 국회의원이 금통위원의 상근여부를 아느냐 모르느냐 이전에 짚고 넘어갈 점도 있다.

세계경제 11대 대국인 한국의 중앙은행 정책위원들과 직원들은 그럼 얼마의 연봉을 받아야 되느냐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금리는 전 국민의 재산 가치를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정책수단이다. 이들의 급여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란 주목적 외에 불의한 유혹을 뿌리치는 부수적 역할도 한다. 중앙은행 직원이라고 해서 11대 경제대국이 아니라 소득 1만 달러 이전 시대로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공정하게 통화정책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국회와 같은 정무현장에 익숙지 않은 실무진에게 고함지르는 전임 부의장, 집 한 채 없는 중앙은행 직원들의 숙소를 뒤집어놓는 실세 정치인의 모습은 소는커녕 닭도 아닌 병아리만 쫓아다니는 검객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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