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는 여운 남는 발언 남겨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만필] 권성동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출반주(出班奏)’라는 한자어를 제시했다.

흔히 얘기하는 ‘4자성어’와 달리 한 글자가 부족하다. 사실 이 말은 4자성어와 같은 철학이나 교훈이 담긴 말이 아니라, 중세 이전 시대의 행정용어에 가깝다.

반(班)열에서 앞으로 나와(出) 임금에게 아뢴다(奏)는 것으로 임금이 조회를 열면 늘상 있는 일이다. 임금 입장에서는 조회마다 겪는 일이지만, 신하 입장에서는 모처럼 큰맘 먹고 바른 소리를 아뢰는 자리니 단단이 마음의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임금의 심기를 거슬려 목이 달아나거나 머나먼 절해고도로 유배를 갈수도 있지만, 임금의 감동을 얻으면 이른바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실천한 날이 될 수 있다.

낭중지추는 자루속의 송곳이 스스로 튀어나와 자기 존재를 알린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재상인 평원군 조승이 자신의 문객인 모수에게 무슨 재주를 가졌느냐고 물어볼 때 언급한 말이다. 낭중지추와 같은 말이 4자성어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기획재정부.


결과적으로 일이 잘돼, 이날의 출반주로 인해 역사에 길이 남는 충신으로 자신을 기록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당장 목이 달아나는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출반주의 최초는 중국 은나라 비간이다.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간언하자 주왕은 비간에게 “충신의 심장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이 맞는 말인지 확인해보겠다”며 비간을 처형했다. 은나라가 얼마 후 주나라에게 정복당하자 비간은 충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장 성공한 출반주 사례 가운데 하나는 삼국지 노숙이다. 중원의 조조가 침략해오자 강동의 손권은 항복과 결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 때 노숙이 손권에게 다가가 “항복을 권하는 신하들은 조조 밑에서도 할 일이 있지만, 주공(손권)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결전만이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다. 이것이 손권의 결단을 이끌어 적벽대전의 대승을 가져왔다.

출반주가 성공하는 대개의 경우는 신하의 간언이 임금의 생각, 즉 성심(聖心)의 연장선에 있고 그 임금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 현군일 때다. 중요 정책의 결단에 앞서 신하의 출반주를 통해 미리 여론의 토대를 구성할 때 출반주는 최대의 효과를 가져 온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한국의 해학과 전통문학의 정서가 가득한 출반주는 별주부전에 등장한다.

▲ 권성동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사진=뉴시스.

용왕이 병이 깊어져, 토끼 간을 구해오는 일을 맡기 위해 자라와 문어가 용왕 앞에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이를 배울 때, 대사 한마디 한마디마다 우리말 특유의 가락과 재치가 넘쳐나 소리 내어 읽기를 거듭했더니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틈만 나면 구절들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권성동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출반주’를 언급할 때도 바로 떠오른 것은 자라와 문어였다.

문어가 장차 문성장군(文星將軍. 문어장군을 조금 ‘폼’나게 표현한 듯 하다)의 직위를 얻어 육지로 떠나려 하자, 자라가 문어에게 해물탕집 광고와 같은 선제공격을 하며 설전이 시작된다.

“인간사람들이 너를 보면 영락없이 잡아다가 요리조리 오려내어 국화송이 매화송이 형형색색 아로새겨, 혼인잔치며 환갑잔치에 큰 상의 어물접시 웃기로 긴요하고, 재자가인 놀음상과 남서한량 술안주에 구하노니 네 고기라. 무섭고 두렵지 아니하냐.”

문어가 분기탱천하여 반격을 가하는데, 그 형상이 이제 막 수족관에서 걷어올린 싱싱한 문어의 형상 그대로 우리 조상 작가의 묘사력이 출중하다.

“문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다리를 엉버티고 검붉은 대가리를 설설 흔들면서 벽력같이 소래를 질러 꾸짖어 가로되” 자라탕을 만드는 요리법을 설파했다.

“요망한 별주부야. 강보에 싸인 아희 감히 어른을 능멸하니 범 모르는 하룻강아지로다. 네 모양을 볼작시면 괴괴망측 가소롭다. 사면이 넓적하여 나무접시 모양이라. 저대도록 적은 속에 무슨 의사 들었으랴.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두 손으로 움켜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내니 자라탕이 별미로다. 세가자제 즐기나니 네 무삼 수로 살아올꼬?”

문어의 반격에 자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지혜를 겸비해 설전의 승리를 가져온다.

“나의 재조 들어보라. 만경창파 깊은 물에 청천에 구름 뜨듯, 광풍에 낙엽 뜨듯, 기엄둥실 떠올라서 사족을 바토 끼고 긴 목을 뒤움치고 넓죽이 엎디면은 둥글둥글 수박같고 편편넓적 솥두깨라. 나무베는 초동이며 고기잡는 어옹들이 무엇인지 몰라보니 장구하기 태산이요, 평안하기 반석이라. 남 모르게 변화무궁 육지에 당도하여 토끼를 만나보면 잡을 묘계 신통하다. 네 어이 나의 지모모략을 따를소냐.”

“문어 그 말을 들으니, 언즉시야라. 하릴없이 뒤통수를 툭툭 치며 흔들흔들 물러나니”라며 미상의 작가는 문어의 수족관으로 돌아가는 장면도 훌륭히 묘사했다.

권성동 의원의 요구대로 김동연 부총리가 출반주를 했다면 과연 자라의 지혜와 문어의 용맹함 가운데 어느 편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출반주가 거론되던 국정감사 현장에서 김 부총리는 “작은 용기와 큰 용기가 있지만 모든 얘기를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다” “제 소신대로 할 말은 해 왔다” “상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거취에 관한 보도와 함께 더욱 여운이 남는 발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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