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 해결책으로 나온 공공 일자리가 본분을 다하려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핀란드는 올해까지 2년에 걸쳐 특이한 실험을 하고 있다. 국민에게 무상으로 급여를 주는 것이다.

실험이므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25~58세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매월 560 유로(약 71만5000원)를 준다. 한국에도 존재하는 실업급여와의 차이는, 이들이 취업을 해도, 또는 취업을 포기해도 무조건 이 돈을 준다.

핀란드가 ‘무상급여’제도에 관심을 갖고 실험에 착수한 것은 기존의 실업급여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취업을 해서 실업급여가 중단되는 점이 취업의지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핀란드가 이 실험에 나서던 2016년 11월의 실업률은 8.8%로 이웃나라인 스웨덴과 덴마크의 7%, 노르웨이의 5%보다 높았다.

이후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는 이 실험에 대한 재정지원을 올해로 종료하기로 했다. 실험을 주도하는 단체에서는 2년의 기간이 너무 짧다고 밝히고 있지만, 핀란드 정부는 별도의 복지시스템을 추진하기로 했다.

핀란드의 실험과 같은 ‘무상 급여’ 체계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 타계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엘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등 유명 인사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일 안하는 자는 밥도 주지 말라”는 한국의 전통적 정서에서는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복지 과잉에 대한 경계심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복지 과잉으로 경제난을 초래하는 몇몇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라면 특별히 들여다 볼 것이 없겠지만, 핀란드 경제는 그런 나라들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핀란드와 같이 높은 수준의 소득을 누리고 있는 선진국이 이런 발상까지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미래의 경제구조와 함께 연구해 둘 필요는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성장만으로 일자리 창출 어려워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과제는 ‘고용 없는 성장구조’다. 사람의 노동이 없어도 경제체제가 자체적으로 생산을 하고 부를 창출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급여를 기여도에 따른 보상으로 해석한다면,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성과를 나눠가질 자격을 갖춘 사람이 줄게 된다. 급여를 받는 사람이 감소하면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이 나라 경제의 소비기반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의 성장을 지속할 기반을 무너뜨린다.

세계 경제는 이제 단순히 성장만으로는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무상임금은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무상임금을 시행한다고 ‘고용 없는 성장’이 해결되지 못할 것은 너무나 뻔해 보인다.

공짜로 돈을 받은 사람이 그 돈을 건설적인데 쓰지 않고, 무분별한 생활을 하는데 낭비할 소지도 크다. 취업의지를 북돋기는커녕 빈곤층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 유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제 국가는 성장에 기여하는 일자리만으로는 국민모두의 생계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게 현실이 됐다. 핵심적인 성장은 ‘똘똘한 기업’ 몇 개만 있으면 해결이 되는데, 이들 기업이 모든 취업희망자를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21세기에 접어든 국가들의 고민이다.

‘공공일자리’의 고민은 이래서 출발한 것이다. 무상급여보다는 뭔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더 낫기는 하다.
 

▲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 /사진=뉴시스.


그러나 공공일자리의 성격상 생산성이 낮은 분야에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급여의 재원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달리 생각을 하려고 해봐도, 해답은 돈을 벌어온 사람들, 특히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받는 방법뿐이다.

세금이 유일한 재원이라는 점을 부인하려고해서는 공공일자리의 진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질 수 없다. 상식적으로 너무나 분명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공공일자리가 돈 벌어오는 기업들 대신 다른 번잡한 의무들을 대신해 준다면 늘어나는 세금에 대한 저항은 웬만큼 누그러뜨릴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하는 공공일자리라면 인정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해 만드는 것이니 몇몇 기간요원을 제외하면 상당수 인원은 이 사회에 없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급여는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과 차이를 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경제가 생산성을 잃지 않는다.
 

공공일자리, ‘패자 부활전’의 성격도 함께 갖춰야

핀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2017년 통계에 따르면, 1인당 4만6000 달러의 국민소득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3만 달러보다 월등히 높다.

이런 나라가 실험에서 지급한 월급이 71만5000 원이다. 먹고 몸을 가리는 것보다 차원 높은 소비를 하고 싶으면 스스로 별도의 준비를 하라는 전제가 포함된 것이다.

한국의 공공일자리는 무상급여와 달리 뭔가 일을 한다지만, 생산성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면 그리 많은 월급을 기대할 수 없다. 생산성 없는 사람들 역시 똑같은 돈을 받으면서 큰소리친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의 마지막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고용안정을 위해 만든 일자리에는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의미는 있다. 자신의 진짜 재능을 아직 못 찾은 사람들, 또는 1차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면서 2차 경쟁을 준비하는 도약단계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공공일자리는 어떻게든 급여를 더 주기 위해 사람을 불필요하게 장시간 부려먹을 일이 아니라, 몇몇 일자리는 다소 부족한 급여라도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한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간관리자들이 ‘이것도 나름 고용기회를 제공한 은혜’라며 규정 이상으로 부려먹는 ‘갑질 폐해’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국민의 성공적 직장생활은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결해줘야 되는 것이 아니다. 기본 토대는 마련해주되,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국민 개개인이 해나가야 할 영역이다.

이와 함께, 복지와 결부된 문제라면 자신의 애국심을 과시하기 위해 무턱대고 ‘복지망국’을 외쳐대는 사람들과는 좀 거리를 둔 냉정한 논의가 필요하다. 복지망국의 단골 사례로 등장하는 베네수엘라도 아니고, 핀란드와 같은 선진국 마저 무상급여를 검토할 정도다. 세계 경제는 정말 냉정하고 깊이 있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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