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공방 때마다 집중취재하던 외신은 잠잠... 무엇이 다른가

▲ KCGI가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경영권 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금까지 한국 재벌그룹에 대한 경영권 공방은 외신의 주요 뉴스였다. 2003년 SK그룹과 소버린, 2015년 삼성그룹과 엘리엇, 그 이후 현대자동차그룹과 엘리엇의 공방은 모두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사모펀드 KCGI가 한진그룹 경영참여를 발표한데 대해 현재까지 외신에서는 거의 아무런 보도가 없다.

소버린 엘리엇과 비교해 KCGI의 가장 큰 차이로 알려진 것은 이들이 국내자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재벌그룹의 ‘CEO리스크’가 발생한 후 주가가 하락하면, 외국자본의 경영권 공격이 벌어졌었다. 순전히 시장에서 형성된 국내자본이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재벌그룹의 경영권 공방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현대그룹이 KCC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지만 이는 범 현대가의 집안싸움으로 보는 정서가 강했다.

외국기업이 경영권을 공격할 때는 ‘국적기업은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 반응이 발동했다. 하지만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약해지고 있다. 삼성과 엘리엇의 분쟁 때 이와 같은 자본의 애국심은 12년 전 소버린 사태와 비교해 크게 약해졌다. 소버린 때 많은 국내 자본들이 ‘백기사’를 선언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 공방 때는 ‘같은 집안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정서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우호적인 민심을 만들었다.

이번 KCGI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우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돼 있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식구마다 하나 이상의 소동을 초래해 지탄의 대상이 됐다.

최고경영자가 불필요한 잡음을 초래할 경우, 이것이 끝내 경영권 위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장경제국가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동안 총수일가가 국가경제 안정을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보호를 받았더라도 점점 시장의 힘이 커지는 상황에선 설령 당국이 나서도 경영권을 지켜주기가 쉽지 않다.

결론은 ‘경영을 잘해야 경영권을 잘 지킨다’는 원칙이 단지 ‘도덕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확인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처음으로 자생적인 행동주의 자본이 등장한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KCGI를 이끄는 강성부 대표는 금융시장에서 M&A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행동주의 자본은 경영에 문제를 드러낸 총수들을 공격함으로써 여타의 모든 총수들에게도 경각심을 갖게 해 시장 전체적으로는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원론적 순기능을 갖고 있다.

외국자본이 공격할 때는 ‘국적기업 방어’라는 명분으로 황금주와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벌 특혜’ 비판에 ‘반시장적이고 억지스런 장치들은 오히려 기업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더해졌다. 황금주 포이즌필은 재계 일각의 요구에 그쳤다.

더욱이 이번처럼 공세에 나선 자본의 국적도 논할 계제가 아니라면, 특단의 경영권 방어 조치를 주장하기는 더욱 힘들게 됐다.

다만, 한국시장에서 아직은 생소한 행동주의 펀드가 지나치게 논란을 초래해 부정적 이미지로 이어질 빌미는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 시장 연착륙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경영참여를 선언한 만큼,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이 이를 환영할 정도로 경영적 능력과 안목을 갖출 것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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