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 기업가문에게 대규모 고용을 담당하는 반대급부는 될 수 있을까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전하는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꼭 언급하는 사실이 있다. 한국의 상속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재벌회장을 비롯한 부유층은 서민들보다 더 높은 비율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들의 상속세율은 50%다. 일본의 55%보다 낮지만, 미국 영국의 40%, 프랑스 45%보다는 높다. 캐나다 멕시코 싱가포르 호주 중국 등에는 상속세가 없다.

숫자로 보면 명백히 한국이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보다 상속세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구광모 회장의 승계를 계기로 재계 안팎 인사들이 또 다시 상속세 인하를 넘어 아예 “세계적 추세”라며 상속세 폐지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재벌그룹 승계 때만 되면 상속세 폐지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상일이란, 한 두 사람 선지자인척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보이지 않는’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원칙이 역사적으로 유구하게 입증된 나라가 오늘날까지 건재 한다.

즉, 여론이 가장 중요하다. 간혹 모든 여론을 ‘국민정서법’이나 ‘떼법’이라는 부정적 어휘로 싸잡아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국가에서 여론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정의로운 엔진이다.

과연, 여론이 지금의 상속세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털끝이라도 수용할 수 있느냐다. 이런 주장을 펴는 정당은 과연 300명 정원의 국회에서 몇 석을 차지할 수 있을까.

제대로 말문이라도 열어 보는 것조차, 지금까지 상속세가 법에 따라 제대로 징수돼 왔다는 국민적 믿음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부의 부당한 세습을 막는 것은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현대 자본주의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 상속세가 0%인 나라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부를 세습하는 것이 아니다. 승계 때는 과세를 안하지만 처분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 이들 국가가 관련 법집행을 얼마나 철저히 하는지도 한국의 상속세와 비교해서 따져봐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절대다수 국민이 현재 합의하고 있는 국가경제의 근본철학을 무시하고 뒤집겠다는 도전이다. 사회 안정을 단번에 뒤흔들어버릴 각오를 하고서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의도 또한 상속세 폐지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신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인 듯 싶기도 하다.
 

▲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을 방문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이재웅 쏘카 대표(가운데). 구광모 회장은 이미 경영권을 승계해 상속작업을 시작했고, 이재용 부회장도 경영권을 승계할 때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그래도 한국의 상속세가 남달리 비율이 높다고 하니, 구체적 숫자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정성을 따져볼 여지는 있다.

대그룹 위주의 고도성장을 하고 그 체제 속에서 대규모 고용을 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근본적 질문 하나를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다.

만약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느라, 재벌그룹의 경영권이 다른 사람, 특히 외국인에게 넘어가거나 사업을 청산하게 되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블룸버그가 자체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15억5000만 달러의 LG그룹 지분을 보유한 구광모 회장이 내야할 상속세는 7148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 160억 달러를 승계할 때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된다. 구 회장의 상속세 10배에 달하는 금액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상속세율이 1%만 달라져도 납부금액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공평한 부의 승계 원칙으로는 재벌들 상속세가 ‘다다익선’이겠지만, 상속세를 못 내서 불가피하게 그룹의 경영권을 넘기는 일이 전혀 없으리란 법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한국 현실에서 이것은 하늘 무너질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벌들은 이 문제를 진작부터 머리 싸매고 연구해 왔다. 미리부터 자녀들 명의로 작은 회사를 세워서 이 회사에 그룹의 일감을 몰아줘 미리미리 그룹의 지분을 늘리게 하거나 상속세로 낼 돈을 쌓아두도록 했다. 10년 전 쯤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가 국정감사의 단골용어였다.

재벌들의 이런 행위가 오늘날 상속세의 ‘폐지’커녕 ‘완화’조차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현실을 자초했다.

하지만, 막대한 상속세가 그룹의 차세대 승계 때마다 경영의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앞장서는 의원들이 대안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이들 의원이 너무나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한 나머지, 다른 현안들에 묻혀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아주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자주 언급되던 시기다.

이를테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규모 고용을 담당하면서 국민적 모범이 되는 기업인에게는 상속세 등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었다.

점점 고용 없는 성장패턴이 심화되는 마당에 대규모 고용이라도 해결하는 기업이라면 경제적 가치와 별도로 존재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의 경제구조가 그렇다.

다만, 이처럼 땅 짚고 헤엄치는 특혜는 기업이 제도와 시장의 규율이 아닌 특혜에 버릇들이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기업가치가 떨어질 소지가 있다.

순간순간의 번쩍하는 아이디어로 국가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초일류 기업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유혹이다.

그러나 업종이 예전같은 고수익을 올리지 못하는데, 지금 당장 막대한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분야라면, 사회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판단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경제적 원칙에 따른 기업생태계의 메카니즘으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성장이 갈수록 고용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공공일자리를 대안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공공일자리를 생각할 정도라면, ‘굴뚝 산업’을 사회 전략적으로 좀 더 오래 유지하는 판단도 못할 것이 없다.

문제는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재벌이 지탱할 수 있는 보완책이다. 이런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된 기업에 한해 상속세를 포함한 혜택을 주는 방안이다.

회장 일가에게는 수익은 좀 덜해도, 경쟁은 덜 치열하고 생존위협이 사라져 지금의 대기업인 지위를 보다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적인 요구조건 하나는 더 붙어야 한다. 바로 총수 일가의 몸가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뉴스에 쏟아져 나온 재벌 소식으로는 이에 해당하는 기업인이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온갖 ‘갑질’, 서민을 향한 횡포로 얼룩진 재벌에게는 반영구적으로 재벌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특혜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의 여론사회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경쟁과 규정이 느슨해지는 특혜를 받았다면, 교과서나 드라마 속의 모범 회장님처럼 보이는 처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필요도 있다.

사족으로,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이 국내외 시장의 최일선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엄청난 부를 벌어 와야 되는 기업들은 이런 논의에서 원천제외다. 경쟁력이 생명인 기업에게 ‘시장의 열외’가 되는 특혜는 기업을 오히려 자생력을 잃어 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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