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예금 기관이 아닌 어려울 때 돌격대 기능이 산업은행 본연의 모습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산업은행을 다시 기재위 소관기관으로 해야 된다는 주장에 찬성한다.

현재 산업은행은 정무위원회 소관기관이다. 일부 정무위 의원이 이런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밥그릇 싸움’의 구태가 아닌, 의정에 대한 성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산업은행은 원래 17대 국회가 해산한 2008년까지 재정경제위원회, 즉 지금의 기재위 소관기관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금융정책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정무위 소관으로 옮겨갔다.

명칭에 ‘은행’이 포함돼 있으니, 당연히 금융위 감독을 받아야 하고, 또 금융위와 함께 정무위 소관이 돼야 할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수출입은행 역시 금융위 감독과 함께 정무위 소관이 돼야 한다. 수출입은행의 실질적 기능에 비춰볼 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산업은행은 원래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돌발적 시기에 고난을 뚫고 나가는 정부정책의 돌격대 역할로 한국 경제에 기여해왔다. 그 과정에서 관치금융의 선봉이란 비판이 불가피하게 따라오기도 했다.
 

▲ 산업은행 본점. /사진=임민희 기자.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정책금융을 맡는 정책금융공사와 상업은행 기능을 하게 될 산업은행으로 돌연 분리됐다. 이명박 정권은 또 상업은행이 되는 산업은행은 민영화를 하겠다며 은산분리까지 완화했다.

이런 결정이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검토에서 비롯된 것이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산업은행의 총수로 부임할 사람에게 더 큰 자리를 주기 위한 ‘위인설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산업은행장들이 KDB 지주회사 회장이라는 이상한 명함으로 ‘재벌 회장 놀이’를 한다는 비판은 이 때부터 나왔다.

비판은 가득하되, 실적은 없는 세월을 5년을 겨우 넘기고 정책금융공사는 다시 산업은행으로 합병됐다.

이명박 정부의 산업은행 정책은 모두 박근혜 다음 대통령에 의해 원상복구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다시 합쳐지고, 산업은행 민영화를 한다고 후퇴시켰던 은산분리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산업은행에 관해서만큼은 이명박 정부의 갈팡질팡 행태를 박근혜 정부가 말끔히 청산한 것이다. 다만 산업은행 총재 명칭이 회장으로 바뀐 것과, 국회 정무위 소관이 된 것이 여태 지속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산업은행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기업인 시절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5대 국회의원일 때 그는 국회에서 산업은행 총재에게 “다른 사람들은 다 은행장이라고 하는 데 왜 산업은행만 총재라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되자 총재는 은행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렇게 산업은행의 수장을 칭호에서 ‘격하’시킨 정권이 나중에는 다시 지주회사 ‘회장’이라는 간판을 달아줬다. 하지만, ‘산업은행 회장’들은 자신들이 책임지고 맡아야 할 부실기관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그 부담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게 만들고 있다.

과거 장관의 포부를 지닌 차관들이 총재로 부임해 책임지고 금융현안을 해결하던 시절보다 뭐 하나 나은 점이 무엇이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민간예금 늘리겠다고 할 때마다 수렁에 빠졌다

한국 정부와 같은 신용정보를 보유해, 어려울 때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할 산업은행이 굳이 민간예금을 받아야 하느냐도 논란거리다. 산업은행이 금융위 감독을 받는다는 이유로 정무위 소관으로 옮겨간 주된 이유가 바로 이 민간예금에 있다.

산업은행의 ‘기관 이기적’ 입장에서는 조달비용 문제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산업금융채권을 팔아서 받는 돈은 이자가 비싼데, 예금으로 받는 돈은 이자가 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누가 산업은행더러 이자장사로 돈을 더 많이 벌어오라고 하는가. 오히려 민간은행의 영역에 정부산하기관이 뛰어드는 것에 불과하다.

지점 늘려 예금 더 많이 받는다고 갑자기 직원 채용을 늘릴 때마다 극심한 인사적체를 초래했다. 희박해진 승진 희망으로 떠나는 사람 가운데는 에이스급 인재들도 섞이곤 했다.

산업은행이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면, 시중은행들을 집적거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해산론까지 나오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업무를 가져오는 연구를 해 볼 것을 조언한다. 산업은행에는 여전히 한국 금융업계 최고의 국제금융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금융의 국제화를 모색하던 1990년대, 밤새워 해외논문들을 독파하면서 자체적으로 통화스왑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처음 내놓은 곳이 산업은행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실적걱정에 이런 첨단상품은 외국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외면하고 있었다.

IMF 위기로 한국에 단 한 푼의 외화도 안 들어오고 있을 때, 오래 왕래해 오던 캐나다 은행들로부터 몇 천만 달러씩 다시 외화를 들여오기 시작해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 던진 곳도 산업은행이다.

이 중요한 정책금융기관을 더욱 발전시킬 생각을 안하고 민간예금기관의 하나로 억지로 바꾸려한 것이 2008~2012년의 산업은행 정책이다. 국회의 소관 상임위가 정무위로 바뀐 것은 그 과정에서다.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산업은행을 감시하는 역할까지 자신들이 계속하고 싶다는 충정은 절대로 ‘밥 그릇 싸움’으로 지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산업은행은 어려울 때의 돌격대라는 옛 장점을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돌격대를 본래 만들어낸 기관과 함께 기재위의 관리를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하나, 20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전에 없는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기재위 의원들은 정치색은 비교적 옅으면서 전문성은 드높았던 전통적 면모를 크게 잃었다. 위원장의 진행이 편파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의원들이 기재위의 일을 소홀히 여겼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런 형편에 소관기관 하나를 더 가져가라는 얘기하기가 조심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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