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요금 인상 추진하는 한 편으로 '자가용 앱' 논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이 피 흘리는 좀비 복장으로 할로윈 파티를 참석했다. 홍대에서 즐거운 파티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나섰다.

그를 태우려고 접근하는 택시는 한 대도 없었다. 그는 끝내 인근 건물에서 밤을 지새운 뒤 지하철 첫차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좀비 손님을 피했지만, 그 대신 지하철 첫차 승객들이 혼비백산했을 것은 분명하다.

택시가 안 잡혀 고생은 했지만 한국에서는 훈훈한 기억들이 더 많아 그는 지금도 시카고커브스 야구경기를 볼 때 LG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간다.

지금의 콜앱을 쓰면, 좀비복장을 한 사람이 어디까지 갈 것이라고 알려줄 수 있지만, 이런 게 없던 시절이었다. 택시기사에게 승객이 좀비냐 아니냐는 별 문제 아닐 수도 있다. 진짜 심각한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다. 기사들은 좌석시트에 뭐가 묻는 것을 아주 질색한다. 커피가 묻어도 불쾌한데 피가 묻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은 물감이나 토마토케첩으로 분장했다는 건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식별할 길이 없다.
 

▲ 성균관대 외국인학생들의 할로윈데이 행사 모습. /사진=뉴시스.


택시문화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해간다. 상대적으로 요금이 더 올라가는 한 편으로 인정이 개입할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 제도가 점점 더 빈틈없이 정착돼가기 때문이다.

빨갛고 동그란 빈차 표시를 꺾어서 30원씩 요금이 올라가던 1970년대 초 기본요금은 160원이다. 이 때 택시요금 1000원은 서울 효자동에서 우이동 그린파크나 광장동 워커힐을 갈 때도 보기 힘든 요금이었다.

기본요금 3000원과 100원씩 올라가는 요즘으로 따지면 당시 택시요금 1000원은 현재의 5800원이다. 지금 효자동에서 5800원 택시요금은 혜화동이나 서울역 정도 가는 거리밖에 안 된다.

정체된 길에서 대기할 때도 요금이 올라가는 병산제가 1985년 시행되고, 요금이 올라가는 간격도 좁아졌다.

택시기사들은 그러나 과거 많은 돈을 가져다주던 합승이 근절된 반면, 요금을 안내고 시비 걸거나 도망가는 등의 몰상식한 범죄행위는 여전하다고 하소연한다.

1980년대 택시문화는 정말 법보다 자생적인 수요와 공급법칙으로 형성됐다.

합승을 승객이 거부하는 건 택시를 안타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행선지가 멀다면 스스로 알아서 가장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택시기사들이 무조건 합승돈벌이만 혈안이 되고 몰인정했던 것만은 아니다.

기자가 학생일 때다. 명륜동에서 집에 돌아가야 되는데 버스는 끊기고 주머니엔 1600원이 있었다. 개포동 집에 가는 차비는 4300원 정도일 때였다. 양재동을 말죽거리라 부르던 시절의 개포동은 타워팰리스가 있는 지금의 개포동과 많이 달랐다.

걸어서 가는 생각을 해봤더니 가장 난관이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다. 1년 전 친구들과 걸어서 건너 본 적이 있어서 한강다리가 얼마나 가도 가도 줄지 않는 곳인지를 잘 안다.

그래도 한강다리를 건너가면 1600원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걸음을 시작했다. 동국대 근처를 오니 다리를 건널 용기마저 사라졌다. 생각을 바꿔 이 돈으로 다리만 건너기로 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사정을 얘기하고 다리만 건너달라고 부탁했더니 기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다 그 지경이 됐냐”며 기사는 나더러 구석자리로 가 앉아보라고 했다. 그가 차를 한남동 논현동 말죽거리(양재동)로 운전하는 동안 계속 손님들이 타고 내렸다.

내가 사는 단지 안까지 데려다 준 그에게 나는 정말 고마워 100원 남은 것 모두 탈탈 털어 드렸다.

이 날의 경험으로 택시를 탈 때는 절대 말썽 부리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서울시가 내년 택시요금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요금이 3000원에서 3800원으로 올라가고 전체적으로 18%의 요금인상이 된다. 서울시 의회 승인은 났고 서울시 물가대책위원회의 심사에 들어갔다.

한편으로 택시기사들은 자가용앱 사용 근절을 요구하며 때로는 집회를 벌이기도 한다.

승객의 입장에서 기사들의 반대주장이 집단 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껏 택시기사들의 시위와 같은 행동이 세상 바뀌는 것을 막은 적은 없다. 2000년 의약 분업만 해도 막강한 조직을 갖춘 의사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 의사들은 “동네병원이 죽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의사나 택시기사나 세상이 변화를 요구할 때 보인 반응이 비슷하다. 아마 의사 기사 아니라도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자신들의 업종에 이런 상황이 닥치면 비슷한 태도를 보일 듯하다.

그게 아직은 한국에서 세상 변혁이 이뤄지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인다. 어떻든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데 누군가는 부질없는 저항도 해야 한다. 겉으로는 부질없어 보여도, 덮어놓고 바꿔보자는 사람들에게 좀 더 현실감을 갖추게 하는 순기능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떻든, 좀비도 심야에 안심하고 택시탈 수 있는 쪽으로 택시문화는 계속 바뀔 것이다. 좀비도 제값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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