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예금과 마징가Z, 일본인들의 내재화된 불안심리의 형상화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본지의 지난해 12월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현금성 예금비율이 50%를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10%, 유럽의 30%와는 단지 숫자의 크고 작음만 비교할 일이 아니다.

우선, 일본은 예금의 이자가 거의 없다. 한두 해 얘기도 아니다. 1990년대 주택금융 부실에 의한 금융불안으로 ‘잃어버린 10년’과 함께 제로금리시대가 도래했다. 일본의 제로금리는 ‘제로금리 함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올려야 하는데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어 현재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보내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에 적용하는 것으로, 은행고객들의 예금이자와는 다르다. 하지만 예금이자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는 기준이 된다.

어떻든 일본의 예금고객들은 30년째 이자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사람들은 예금을 선호한다. 그래서 일본의 현금예금 50% 이상이란 소식이 더욱 주목된다.

원래부터 저축을 중시하는 일본사람들이 불안한 장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예금을 중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장래불안을 대비한다는 것 역시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논리학에서 중시하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엄청난 파국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몇 차례 뉴스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물론 모든 일본사람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려서 본 만화에서 일본사람들의 불안이 형상화돼서 담겨있다고 한다.

1970년대 인기 만화 ‘마징가Z’다.
 

▲ 최근에 다시 제작된 ‘마징가Z: 인피니티’의 모습. 마징가Z의 1970년대 원래 모습인 매끈한 모습과 달리 악어껍질같은 피부를 갖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인류의 기술진보에 따른 현실성을 더욱 높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이 만화는 매번 헬박사의 로봇들이 쳐들어와 도시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 장면에서 헬박사의 로봇을 지우면, 2차 대전 때 공습 받는 일본 도시들의 모습이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이나 중국 등 이웃나라 국민의 관점에서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전범이다. 그러나 평범한 일본국민들은 제국주의자들의 홍보정책에 젖어 살아온 마당에 미군의 폭격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응징이었음을 알기 어렵다. 이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연적으로도 지진과 해일 등의 재난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런 극복할 수 없는 재난들을 일본사람들은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차분하게 대비할 수 있을 때까지 대비하는 심성을 갖춰온 것으로도 해석된다.

1970~1980년대 일본경제가 절정을 이룰 때, 서방의 논객들은 시샘을 섞어 “돈을 많이 벌면서 토끼집에서 사는 일본인”이라고 조롱했다. 소득수준은 세계 최정상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작은 아파트에서 사는 행태를 말한 것이다.

예금불안과 마징가Z는 일본인들의 내재화된 심리를 보여준다. 내재화가 됐다는 것은 어설프게 불안을 이겨보겠다고 덤비거나 또는 좌절하기보다, 이를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침략과 그에 대한 사과에 인색한 점 때문에 국가로서의 일본이 비난을 받고 있지만, 개별적인 일본 친구들에게서는 마치 구도자와 같이 자기 일에 정진해 가는 면모를 찾을 때가 많다.

지난 월드컵축구 때 유일하게 자신들의 라커룸을 청소해간 일본 국가대표팀처럼, 일본사람들은 세계의 모범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관조적이고 달관한 집단 정서는 경제적으로 성장엔진을 가동하기 힘들게 만드는 면도 있다.  성장의 기초가 되는 ‘합리적 탐욕’이 달관한 심성으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전 후 일본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이 더욱 놀랍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사람들과 가장 많이 다른 점이 ‘흥’이다. 한국인들은 흥이 많다. 한도 깊지만 흥도 많다. 일본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속어로 ‘앗싸리’하는 기질이다.(물론 이 또한 지나친 일반화의 소지를 안고 하는 얘기다.) 우리끼리 먹고마시는 행위의 경제적 비중이 일본보다는 훨씬 커지는 구조다.

요즘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을 널리 홍보하는 글은 대부분 술문화, 떼창과 같은 노래문화, 한번 시작한 회식이 3차, 5차로 이어지는 끝장기질들에 관한 것이다.

일본사람들의 선지자 같은 차분함이 성장요인 가동을 어렵게 한다지만, 한국 사람들의 ‘흥’은 성장경로를 냉철하게 찾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특유의 차분함으로 장기전망을 냉정히 하고 치밀하게 연구하는 데 강하다. 한국인들은 특유의 ‘끼’가 발동하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의 멋진 순간을 연출해낸다.

두 나라 국민들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합친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만들어질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특징은 자연, 지리, 지나온 역사에서 형성된 것이니 입맛대로 취하고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성향이 다른 것이 명백하다면, 두 나라의 일정 단계이후 성장전략에도 차이는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기술진보에 의한 성장국면이라면, 그런 차이를 굳이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0년째 이자를 안준다는데도 한국인들은 저축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이 점은 확실히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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