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장기화·격화될 때의 역풍은 분명히 심각할 것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아시아 금융시장은 8일 비교적 쾌적한 편에 속한다. 니케이225지수는 오후 2시(한국시간) 현재 1% 넘게 오르고 있고 항셍지수도 그만큼은 아니라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금융시장의 위험지표를 역으로 나타내는 엔화환율은 0.2% 넘게 오르고 있다. 엔화환율 상승은 역내 최대 안전통화인 엔화에 대한 수요 감소를 의미한다. 굳이 안전한 돈만 찾을 때가 아님을 나타낸다.

이같은 분위기는 전날 뉴욕 주식시장의 훈풍이 그대로 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금융시장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코스피지수는 소폭 하락하고 있다. 하락폭이 주목할 정도는 아니지만, 국제시장과의 연동성이 큰 한국 주식시장이 이런 날 하락한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엔화환율이 상승할 정도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낮아졌으면, 신흥국통화인 원화가 강세를 보이게 마련인데, 반대다. 원화환율은 6원 가깝게 상승해 원화가치가 비교적 큰 폭으로 절하되고 있다.

원인은 이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실망이다. 이날 한국시장에는 또 다른 주요현안이 있다. 국민은행 노조가 19년 만의 파업을 벌인 것이다.

시장에 대한 냉정함을 잃지 않고 말하자면, 이날 한국 금융시장의 부진은 국민은행 파업과는 좀 거리가 멀다.

외신에서도 삼성전자 실적 실망을 굵직하게 다루고 있지만, 국민은행 파업은 전날 예고하는 기사가 몇 군데 매체에 기사목록의 하나로 전달됐을 뿐이다.

물론, 본질적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파업 때문에 이날 한국 금융시장만 부진하다’고 전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만약 이런 식으로 뉴스를 전하는 언론이 있다면, 경제보다 정치놀음에 뛰어드는 매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의 실체적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로부터는 외면당할 것이 분명하다.

19년만의 파업이 시장에 충격을 주지는 않고 있는데, 하루에 그치는 단발성 이벤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 또한 역풍에 대해 의식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파업의 단계를 지나 장기화되고 격화될 경우의 파장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 국민은행 노조원들이 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 선포식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엇보다, 19년 전 파업 때의 국민은행과 지금의 국민은행은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

엄밀히 따지면 19년 전이 아닌 18년 전의 일이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지금의 국민은행이 탄생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도 ‘KB’ 브랜드는 웬만한 투자자들도 인지할 정도가 됐다. 예전의 ‘Kookmin’이나 ‘H&CB’를 합친 것을 압도한다.

합병 당시 두 은행 노조 모두 합병에 대해 반대했지만, 격렬함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더 강하게 반대한 쪽에서 커다란 소동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이 은행의 은행장은 통합은행장 선임과정에서 커다란 불이익을 받았다.

두 은행 노조의 저항은 은행권 뉴스에서 보기 힘든 사진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일산의 연수원에서 농성하던 노조원들의 텐트는 진압헬기가 일으키는 거센 바람 속에 날아갔다.

지금은 정치권에서 노동운동을 성원하던 사람들의 지지를 예전만큼 기대하기도 힘들다.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이다.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에서는 ‘안 하던 파업을 왜 이제 하나’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노조는 파업에 나섰다. 나름대로 물러서기 힘든 상황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겠지만, 특히 이럴 때일수록 상황판단을 매 순간 더욱 냉정히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은행권 노조운동을 돌이켜보면, 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자는 자세를 버리고 어떤 것이 은행원들에게 ‘결과적으로’ 이익인지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라는 말은 앞으로 두고두고 은행원이 될 사람들의 이해, 이 사회의 금융노동운동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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