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을 결정하는 건 답변이지, 질문이 아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윤보선 전 대통령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두 번째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은 1967년의 중앙청 기자실이다. (혹시 직접 현장에서 본 것을 쓴 것인지 의문을 갖는 독자들께는 미국 드라마 NCIS의 깁스 반장 대사로 답변을 드린다. “I’m not that old.” 깁스 반장은 “자네가 월남전 영웅인가”라고 묻는 국장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소개하는 사례는 2000년 무렵, 기자협회보에 실린 원로기자 이성춘 전 한국일보 이사 글에서 본 것이다.)

홍종철 전 문교부 장관이 공보부장관과 정부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5.16 군사쿠데타에도 가담한 군 출신 인사다. 전역한 후에도 그는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억센 평안도사투리는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런 사람이 정부출입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을 맡았으니 충돌이 없을 리 없었다. 기자들을 “자네”라고 부르면서 “똑바로 하라우”라는 반말을 일삼았다. 기자한테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는 일도 벌어졌다. 마침내 모든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자, 기세등등하던 홍 장관도 마침내 기자실에 나타나 “반성의 기회가 됐다. 평소 반말은 기자들을 친동생이나 자식같이 여겨서 그랬던 것”이라고 ‘사과 아닌 반성’을 했다.

그의 별명은 ‘살콰주’였다. 평소 반말을 일삼으면서도 특종을 터뜨리는 기자한테는 “그건 또 어데서 취재했네? 날 좀 살콰주그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다녀서 생긴 것이다.

이 ‘살콰주’가 어느 날 중앙청 기자실에 대단히 상쾌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지금의 광화문 자리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중앙청으로 쓰일 때다.

그는 “지방을 둘러보니 박 대통령 각하 재선은 기정사실이 됐더라. 오늘은 뭐든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오늘은 정말 화를 안낼 건가”고 묻자 살콰주 장관은 “나는 한번 약속하면 지킨다. 걱정 말라”고 다짐했다.

기자는 “민심이 등을 돌려 이번 대선은 여당 패배가 확실하다. 현 내각은 언제부터 야당에게 정권 인계 작업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살콰주 장관은 한동안 침묵에 빠져 담배만 뻑뻑 피웠다. 이미 그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마침내 열린 그의 입에서 “이 두 손가락으로 네놈 XX의 눈을 파버리겠다”는 고함이 터졌고 기자들은 모두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고 이 전 이사는 전했다.
 

▲ 기자회견장에서의 충돌은 최근 미국에서도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짐 아코스타 CNN 기자가 이민정책에 대해 질문보다 항의에 가까운 발언을 이어가는 동안 다른 기자들은 자신의 질문기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CNN 화면캡쳐.


2004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동에 대한 무력정책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가장 강력한 동맹이었다. 이 때문에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란 조롱을 들었다.

두 사람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블레어 총리를 정말 당신의 푸들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블레어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맞다’고 얘기하면 안돼요. 내가 곤란해져요”라고 끼어들어 회견장은 폭소를 한바탕 터뜨리고 넘어갔다.

대통령, 총리 등 중요한 인사들의 기자회견장은 언제나 무례한 질문이 나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 대통령도 사람이라, 순간의 분노를 못 참을 때도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기자회견 때 기자의 질문에 지나치게 매몰찬 반응을 보였다가 나중에 사과를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무례한 질문은 받는 사람에겐 시대의 명언을 남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촌철살인과 유머의 전설이 된다. 역사 기록에 물어본 사람은 남지 않는다. 대답한 사람만 남는다. 기자회견의 본래 목적이기도 하다. 이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대중이 많은 정보를 얻고 싶기 때문에 이런저런 질문이 나온다.

때로는 상대의 강한 논리방어막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교란성 질문도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지켜보는 제3자 눈에 무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답변보다는 기자가 자기 생각을 과시하려고 던진 질문이라면, 발언기회를 애타게 기다리던 다른 많은 기자들의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것이 된다.

한국은 10년 가깝게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제대로 갖지 못한 기간이 있다. 한 때 사라졌던 군사독재 시절 잔재를 되살려, 사전에 제출받은 질문에만 답변을 하는 대통령이 있었다.

이런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이 또한 한동안은 시행착오를 거칠 일이다. 미리 제출하는 질문만 해 왔으니 아직은 청와대 기자단의 문화에 훌륭한 질문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훌륭한 질문의 기준은 질문이 아니라 답변에 있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세상을 꾸짖을 수는 있어도, 기자회견과 같은 취재현장에서 자신이 개입해서 상대를 꾸짖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걸 할 사람은 그 현장에 따로 있다.

기자가 자기과시의 충동을 앞세우는 것만 아니라면, 질문의 타당성은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맞다. 다만 제대로 된 기자회견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이건 뭐, 예의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질문만 난무하는 과도기도 거쳐가게 될 것이다.

본지가 주력하는 경제 분야는 쏟아지는 숫자를 통해 어떤 변명도 가능해지는 영역이다. 30분 전에 배포된 보도자료의 도표만 훑어보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보도자료 맨 앞장 요약문은 항상 좋은 얘기만 담겨 있다.

맨 뒷장 도표 어딘가에 아주 심각한 숫자가 적혀 있는데, 그걸 아무도 못 보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발표하는 당국자는 흔하다. 기자들로서는 당국자들의 이런 보호막을 뒤흔드는 연마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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