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에 '경영권 간섭' 타령 할때 아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복고등학교 동문이다. 조 회장이 이 부회장의 20년 선배다. 2세 회장과 3세 총수에 해당하는 나이차다.

두 사람은 학연 말고도 또 다른 사연으로 본의 아니게 인연이 얽히고 있다.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같은 강경한 자세는 국민연금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투자자들의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문형표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속돼 최근 구속만기로 풀려났지만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나 ‘사법개입’ 등에는 관심도 없던 외국인들이지만,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문제도 초래했었다.

국민연금이 과연 주주로서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느냐는 국내외비판에 시달리고 있던 터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물산 트라우마’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 행사를 천명하며 조양호 회장 연임불가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한진그룹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국내 최초 행동주의 펀드인 KCGI가 경영참여를 하겠다며 총수일가 견제에 나서고 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은 12%에 가까운 대한항공 지분, 7%를 넘는 한진칼 지분을 갖고 있다. 조 회장 측이 두 회사 모두 30%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어서 단순비교로는 숫적 우위다. 그러나 KCGI가 국민연금에 가세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까지 조 회장 일가의 그동안 추태를 지탄하는 선택을 할 경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재계 일각에서는 특유의 ‘뻔한 불만’이 또 다시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경영권 간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불평이 ‘주주권 간섭’에 해당한다. 총수 일가의 추태로 이 지경에 이르러 주주가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여전히 억지스런 논리로 맞서는 재계의 태도가 반발 심리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개인주주들까지 “이 사람들은 이대로 안되겠다”고 작심할 수도 있다.

조양호 회장으로서는 하필 자신에 대해 세게 나오는 국민연금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재계의 어른이 된 현실에서 대내외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여움보다는 “저들의 처지가 오죽하면 나에게 이러겠냐”고 헤아리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국민연금 아니라도, KCGI와의 합의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도 있다. 설령 그 또한 여의치 않다 해도, 다행인 것은 현재 관건이란 것이 겨우 회장직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점이다.

한국의 대그룹 현실에서, 재벌 총수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해도 이 그룹 내에 “주인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직원은 0.001%도 안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과 선이 닿을 듯한 모든 사람을 전부 다 반대할 기관도 아니다.

회장을 계속하느냐, 잠시 쉬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소동을 초래한 근본원인 해결이다. 그것이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장 큰 심정이다.

지난 한 해 쏟아진 뉴스를 보면, 조양호 회장은 드라마에서 보던 재벌의 삶과 너무나 달랐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한 재벌이 아니라, 가족들이 뭔가에 의해 불안에 시달리고 잠시도 마음이 편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10위권에 근접한 국내 대그룹 총수의 가족들이 드러내는 이런 모습은 제3자가 보기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인데 왜 저리 불안하게 사는지 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한진그룹에 필요한 것은 대주주가 차분한 심정으로 사물을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소한 문제들을 방치했다가 최근 몇 년 동안 폭풍우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다급하게 폭풍에 맞서려하기 보다 순리대로 흐름에 따르려고 하면 일거에 모든 문제가 다 풀릴 수도 있다.

다만, 최근 경제상황이 안 좋아 정부가 재계를 대하는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는 하는데 한진그룹은 좀 예외일 것 같다. 유독 이 그룹만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재벌개혁’의 마지막 시험대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경쟁항공사인 아시아나 그룹의 박삼구 회장이 한 때 조양호 회장일가를 대신해 세간의 관심을 가져갔지만, 극히 잠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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