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서울시의 공간 조성 실력 자체가 의심스럽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경복궁 맞은편 효자동에서 태어나 50년을 훌쩍 넘게 서울에서 자라온 입장에서, 충무공 이순신 동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기억의 교란이다. 충무공 동상이 세워진 것이 1968년이라고 하니 동상 자체는 기자보다 약간 젊은 편이다.

서울의 종산(宗山)인 삼각산, 주산(主山)인 북악산에서 경복궁, 육조거리(세종로), 태평로, 남산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중심선에 동상이 서 있다. 민족의 수호신과 같은 모습이다.

이순신 동상이 왜 거기에 있는지라는 의문을 던져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그 이유를 나름 깨달은 날이 있었다. 2016년 11월12일이다.

50년 가까이 본 동상이 그날따라 유난히 역동적으로 보였다. 그때까지 칼을 짚고 서 있는 것으로만 봤지만, 힘차게 한발을 내딛고 있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날의 상황 때문인가 했었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던 날이다.

그러나 곧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동안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만 했는데, 이 날은 차가 다니던 도로에 서서 평소보다 훨씬 가깝게 동상을 보게 된 것이다.

백만시민이 충무공의 가호를 받으며 마음껏 주권을 행사하는 듯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의 정치논쟁과는 전혀 무관한 민족의 영웅이다. 이 동상이 세워진 것은 박정희 대통령 치세인 1968년 4월27일이다.

보수든 개혁이든, 심지어 군사독재자라도 이순신 장군만큼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국가의 상징인 것이다.

국민들이 장엄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현장일수록 그 곳에 충무공이 서 있어서 한층 더 의미를 분명하게 하게 된다. 2016년 백만명 시위가 끝난 후, 시민들은 자신들이 들고온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과연, 선조의 가호를 받는 후손들로서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 2016년 11월12일 백만명이 넘는 서울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 시위를 하던 날의 서울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왼쪽). 시위가 끝난 후 시민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모습(오른쪽). /사진=장경순 기자.


최근 서울시가 무슨 공모를 통해 광화문 광장을 다시 만드는 아이디어를 모았다고 한다. 가장 훌륭하다고 선정된 아이디어에 충무공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이디어는 자유고, 출품하는 것도 자유다. 거기에는 뭐라 비난할 소지가 전혀 없다.

그러나 충무공 동상을 옮겨가는 발상을 ‘가장 훌륭하다’고 선정하는 서울시의 판단능력은 심각하게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를 과연 얼마나 오래 책임졌다고, 조선과 대한민국을 이어서 겨레를 상징하는 위인의 동상을 옮긴단 말인가.

충무공은 16세기 임진왜란 때의 영웅이지만,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은 역사 때문에 더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동상을 광화문 한복판에서 구석으로 옮겨간다고 했을 때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 지금 친일파 잔당들이 제일 좋아할 일을 가지고 여론의 ‘간 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옮겨갈 위치로 옛 삼군부 자리라 해서 정부서울청사 앞을 제시한 논리조차 초라하고 궁색하기 짝이 없다. 조선 초기 군의 전투기구도 아니고 행정기구였다가 충무공 탄생 100년 전에 사라진 삼군부하고 이순신 장군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동상 옮긴다고 하면 욕먹을 걸 미리 짐작하고 준비한 변명거리로 보일 뿐이다.

뭣보다, 얄팍한 순간의 충동으로 국가의 상징에 함부로 손대는 심보가 밉살맞기 그지없다.
 

뭘 자꾸 하려는 충동 자체가 시민들은 걱정스럽다... 그 실력에

또 한편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진작부터 갖는 의심은 서울시장들마다 왜 이리 공원이나 기념물 조성에 안달하느냐다.

박원순 시장만해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을 밀어붙이더니, 이제 또 광화문 공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통량 등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검토했겠지만, 과연 대한민국 제1도로인 그 곳에 큼직한 공원이 자리해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이론적 검토를 했더라도 현실에서는 다양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국가 최고권력부와 전국을 이어주는 도로다.

조순 전 시장의 여의도공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이후 시장들마다 공원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박원순 시장이 대놓고 얘기는 안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이명박 전 시장’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장들이 자꾸 만드는 공원과 조형기념물들이 갈수록 시민들에게 외면 받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런 ‘볼 거리’들이 인기몰이를 위해 졸속 결정됐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도시경관이나 디자인에 관한 서울시장들의 안목을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다. 서울시 옛 청사를 뒤에서부터 삼키는 파도괴물을 보고 살아야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시장님들이 관리행정에만 전념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 절실하다.

서울시장에 3번이나 당선된 박원순 시장인데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리는 없다. 박시장으로 인해 대단히 상쾌하기 이를 데 없는 변화를 절감한 적도 있다.

그가 당선된 직후, 버스 안내방송에서 “다음 정류장은 아무개 대통령 가옥입니다”라는 멘트가 “신당동 떡볶기 타운입니다”로 원상복귀 됐을 때다.

버스를 타고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을 것이 분명한 몇몇 서울시 직원들이 한 2년 동안 버스정류장에 이런 유치한 정치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공항도 아닌 동네 버스정류장에 이름을 내거는 대통령들 처지도 덩달아 초라해졌었다. 이것을 박 시장 당선과 함께 바로 잡았던 거다.

뭘 자꾸 억지로 만들어보려는 것보다, 있는 거 관리를 잘하고, 예전 잘못된 걸 바로 잡기만 해도 시민들에게 훌륭한 시장님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수 있다.

“이 정도 기억은 약할 거 같은데” 싶어서 되도 않는 억지 일을 벌였다가는 두고두고 흉물스런 상징물과 함께 시장의 이름 석 자는 악몽으로 남게 된다.

2011년 10월27일, 박원순 시장은 물러난 시장이 남겨준 ‘파도괴물’ 청사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그가 ‘이런 괴상한 건축 사업은 더 이상 하지 말자’라는 시민들의 심정을 얼마나 공유했는지 모르겠다. 박 시장 역시 취임 후 이것저것 자꾸 만들려는 모습 때문에 그렇다.

경제성장세도 둔화됐다는데, 시민들은 시장이 일자리나 성장동력에 더 많이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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