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직후 방송국 두 개를 세우며 고용창출하던 힘의 원천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지금도 가끔 게임채널에서 스타크래프트1 경기를 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채널이 고정된다.

헤드셋을 끼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 얼굴이 아주 낯설지 않다. 그러나 누군지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중계하는 해설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예전의 누구였는지 깨닫는다.

10여 년 전 스타크래프트1을 취재할 때, 참으로 앳되고 동안이었던 대부분 10대, 또는 20대 초반이었던 선수들이다. 그동안 세월에 이제 ‘군대살’이 더해진 풍채를 갖추게 됐다.
 

▲ 스타크래프트1 리마스터의 한 장면. /사진=스타크래프트 홈페이지.


지금은 방송인이 된 임요환, 홍진호처럼 예전 얼굴 그대로인 경우도 있지만, 두 사람이 당시 프로게이머의 전부 다는 아니다. 이보다 수 백 배 더 많은 엄청난 ‘우리 아이들’이 대단한 감동의 승부현장을 만들어냈던 스타1이다. (얼굴이 안변하기로는 ‘광통령’ 강민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맏형’급이었던 선수들의 모습이 그대로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게임이란,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곤한다. 돈을 걸지 않는 차이가 있지만 “한참 일할 젊은 놈이 쓸데없는 놀이로 소일하고 있다”는 어른의 꾸중을 듣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할 일 없이 게임에만 열중하는 애들이 방송국 두 개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게임매체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하나의 새로운 업종을 형성해서 수없이 많은 관련 일자리를 창출했다.

한국전쟁 후 최대 국난이라는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 직후의 일이다. 일자리는 뭣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던 시절이다. 

이른바 ‘SKY’라는 명문대학과는 전혀 담을 쌓았던 ‘우리의 조카들’이 만들어냈던 놀라운 경제성장의 실제이야기다.

광안리에서의 경기는 10만 명의 엄청난 관중이 몰렸다. 미국의 프로레슬링 WWE가 연중 최대행사 레슬매니아에서도 동원하기 힘든 인파다. 다만, 여기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로 인해 입장료 등의 수익행위를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만들어냈던 시장에 어른들도 제대로 호응을 해서, 삼성 SK KT CJ, 당시에는 신흥재벌로 명성을 떨치던 STX, 그리고 팬텍과 같은 대기업들이 팀을 구성해서 이 판에 뛰어들었다. 공군은 한때 ‘공군 에이스’팀을 만들어 이 팀의 단장인 현역 대령이 다니는 곳마다 젊은 팬들로부터 음료수 선물 공세를 받았다.

스타크래프트1은 이제 게임산업에서 비중이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그러나 이 때 일궈낸 게임산업의 기반은 후일의 다른 게임들이 성장하는 토양을 만들었다. 한국은 여전히 전세계 게임산업의 ‘성지’로 평가받는다.

스타크래프트1의 신화는 출중한 가방끈을 자랑하면서 한국 경제에 마치 남의 일처럼 훈수 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깊이 있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의 한국 사람들은 뭣에 강한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힌트를 던지기도 한다.

분명 이 게임은 미국 게임사인 블리자드가 만들었고, 모든 지적소유권을 이 회사가 갖고 있다.

그런데 블리자드가 만든 모든 게임이 다 이렇게 대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공부와 같은 ‘청소년 본분’과는 저만치 담을 쌓았던 아이들이 치열한 ‘국내 리그’를 만들었고 거기서 무수한 경제적 부가가치가 탄생했다.

이런 식의 고용창출과 성장유발은 이때까지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성장은 항상 명문대학 나온 사람들이 외국 기술을 베껴 와서 한국에서 남보다 빨리 써먹는 것을 유일한 성장경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점잖은 분들의 ‘4차 산업’ 타령이 수도 없이 쏟아지지만, 대부분 와 닿지 않는 이유다. 4차 산업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이 단어를 내세워야 대접받는 줄로 여기는 ‘클리셰’로 더 많이 쓰인다.

치열한 국내리그는 원래 제작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게임 활용법을 양산했다.

좁은 입구로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러커 변태로 시간을 버는 ‘장판파’ 전략, 입구에 프로브를 모아놓고 아비터의 스태시스로 얼려버리기, 적의 자원채취 지역에 마린 하나와 메딕 둘 투하 등은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생각도 못했을 전술이다.
 


내가 본 임기응변 전략의 압권은 다크템플러의 망토 방어였다. 프로토스 대 프로토스 경기에서 박영민은 정찰에서 상대의 다크템플러 빌드를 알아차렸다. 방어탑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도 다크템플러 둘을 생산해 입구에 세웠다. 침투해 오던 상대의 다크템플러는 입구에 보이지는 않는데 뭔가가 서 있는 바람에 진입을 못하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경기를 중계하던 이승원 해설자는 “망토가 걸려 못들어갔다”고 촌평했다. ‘육룡’의 전성기가 오기 직전 프로토스가 가장 부진했을 때, 혼자서 8강을 지키며 종족을 지탱했던 박영민은 ‘노룡’의 별명을 얻었다.
 


게임의 창조자들도 예상 못한 현란한 플레이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임요환과 이윤열은 한국 아닌 외국에서는 게임아이디 ‘BoxeR’ ‘NaDa’로 더 유명했다.

스타1의 정상급 선수들 일부가 은퇴한 후 방송인으로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 게임이 얼마나 탄탄한 문화코드를 만들었는지를 방증한다.

어른들의 한 때 판단착오가 더해져 이 게임을 더 큰 경제시장으로 만들지 못하고 서둘러 후속게임들에 자리를 물려줘야 했던 아쉬움은 있다. 이후의 게임들이 게임계를 초월한 사회적 맥락에서의 비중을 아직은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 선진국에서 해봤던 업종을 따라잡으면서 성장했다. 외국에 존재하는 일자리를 우리도 본떠서 만들어왔다.

스타크래프트 신화는 이런 고전적 패턴을 뒤집는 것이었다.

세계 11대, 또는 12대 경제대국(러시아와 순위가 뒤바뀌곤 한다)으로서 성장패턴은 ‘한강의 기적’시대 전략만으로 한계가 있다. 이것은 명백한 현실이고, 또 성장단계에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첨단기술을 동원해 기계와 부품을 만든 건 삼성전자다. 그 부품들을 가지고 어떻게 써먹을까를 고민한 것이 애플이다. 오늘날 세상은 혁신을 이룬 건 애플이라고 평가한다.

스타크래프트는 이런 한국과 세계의 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 소강상태라고 해도, 아직 한국에게 꺼내지 않은 잠재성장 카드가 있다면 그건 ‘소프트웨어적 충동’이라고 할 것이다. 대중들이 뭔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되, 치열한 국내리그를 만들어 그 부가가치가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스타크래프트 성장신화’의 핵심이었다.

오랜만에 예전 취재다닐 때 기사 하나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2007년 초, 배틀크루저 40척이 등장하며 한 시간 넘게 걸린 이윤열의 경기다. <관련 블로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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