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야는 오래 전 확인한 원칙도 자꾸 논란을 반복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5.18 광주항쟁에 일부 극우인사들의 무분별한 언동이 큰 소동을 가져왔다. 

쓸데없는 과잉발언이 혼란을 가져온 것이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당사자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강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거대양당 가운데 하나인 자유한국당이 원칙적으로 소속 의원을 출당시키는 조치를 통해 원칙을 분명하게 확인한 면도 있다. 최소한 제도권 정당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5공 독재세력의 범죄를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가 수 천만 명 이상 되는 나라는 이런 계기를 통해 국가의 가치관과 역사관의 최대 허용 범위를 정립해갈 때가 많다.

앞으로 혹시 또 다시 비슷한 소동이 벌어진다면, 이러한 군사독재자들과 같은 언동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비판받고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흑인노예 착취와 독일의 나치 범죄에 대해 이들 나라 국민들이 대하는 것과 같은 엄중한 응징이 당연시될 것이다. 이것은 특정정당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연스런 반응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사회의 주요 이슈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명쾌한 가부의 기준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 분야는 좀 사정이 다르다.

시장의 규율이 명확해야 궁극적으로 주가도 오른다는 사실을 한국 경제는 지금부터 15년 전에 크게 경험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데다, 주가 상승의 혜택을 받는 사람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대중적으로 깊게 자리 잡지는 못한다.

이 점에 편승해, 시장을 좀 더 투명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주장들이 또 다시 빈틈을 찾아 기승을 부린다.

공정한 시장이 갖춰지면서 예전과 같은 부당한 이득을 얻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경제 발전 단계의 역사성을 인식해 새로운 시장규율을 기꺼이 수용하는 부류와 시대흐름을 정지시켜 여전히 예전의 부당이득을 얻으려는 부류다.

후자들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분명히 원칙을 확인한 것에 대해 두 번, 세 번 똑같은 논란을 반복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경제 분야의 가치관이 정치나 사회분야처럼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경제문제를 정치·이념 문제와 결부시켜 경제적으로 이해무관한 사람들까지 정치적으로 선동을 하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최근,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가 이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 1일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했다.


‘국민의 쌈짓돈’이라는 국민연금이 막대한 돈을 투자한 회사에 대해 경영을 제대로 하는지 장부도 들여다보고 의견을 제시하는 건 주주권 차원뿐만 아니라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당연하다.

혹자는 이것을 ‘연금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의도가 가득한 용어를 갖다 붙이면서 국민의 안보심리를 자극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몇 천억, 몇 조원씩 되는 돈을 그저 ‘눈먼 돈’처럼 맡기고 있어야 하느냐다. 특히, 재벌총수가 복잡한 경영의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가족들의 행패 등 무분별한 처신으로 말썽을 초래한 기업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나.

불과 4년 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을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찬성했다가 이사장이 옥고를 치르는 수난을 겪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국민연금의 합병찬성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조장했다는 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한국의 성장전략으로서 매우 타당하다. 여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재벌총수의 무분별한 행위까지 못 본 척 하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까.

앞서 언급한 15년 전 한국에서는 4대 재벌가운데 두 명의 회장이 옥고를 치렀다. 다른 굵직한 재벌 총수들도 수감되거나 심각한 법과 여론의 추궁을 받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전에 없이 재벌회장 하기 힘든 시기라고 할 만 했다.

그런데 종합주가지수, 즉 지금의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2000을 넘은 것이 이 시기다. 그 이전엔 몇 십 년 동안 정권 초기에만 잠시 1000을 갔다가 오래 못 버티고 절반 이상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2005년의 경우, 대표적인 증시 낙관론자의 별명이 ‘천 간다’였다. 그만큼 코스피 1000 이란 오랜 세월 바라보기 힘든 천상의 세계였다. 그랬던 것이 불과 2년만인 2007년 2000을 올라가 오늘날 주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재벌회장이 감방에 가서 주가가 올랐다기보다, 예전과 달리 엄격하게 시장의 규율을 적립하는 노력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제 투자할만한 곳이라는 평가를 얻었던 것이다.

혹자는 당시 세계적으로 떠도는 돈이 많아서라고 의미 축소하지만, 단기투기 목적이 아닌 국제 투자자들은 아무리 남는 돈이 많아도 투자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곳을 찾지 않는다. 한국 주식시장이 1956년 탄생한 후 내내 이 기준을 맞추지 못했었다.

재벌회장이 감방을 갈 때마다 ‘반기업 정서’ ‘기업하기 힘든 나라’ 타령을 하던 사람들은 낯 뜨거운 줄을 알고 자신의 부족한 인식을 시장경제에 대한 학습으로 보충해 나가야 할 일이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또 다시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반기업’ ‘연금사회주의’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15년 전, 순환출자 해소 요구는 재계와 ‘친 기업’ 정치인들로부터 “경제안보를 저해 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이 정치인들은 8년 후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에서 경제민주화를 주도하는 의원들이 됐다. 지금의 재계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한 지주회사 체제에 적극적이다. 지주회사 체제를 했더니 대주주의 지배력이 오히려 더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때 한사코 경제안보 주장하던 다른 사람들은 오늘날 어디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사람들 때문에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의 50% 넘는 외국인들이 전부 똘똘 뭉쳐 삼성을 뺏겠다고 덤벼들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이 외국인들은 국적도 다르고, 성향도 제각각이다. 단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공통점만 갖고 있다.

정치가 시민들의 기준에 미흡하다지만, 경제의식의 선진화는 정치보다도 훨씬 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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