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근무일에 LG상사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된 이희범(64) 경총회장의 거듭된 변신이 재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몇몇 자리를 거쳤는지 헷갈릴 정도로 변신, 또 변신해온 이 회장이 LG에 정착하자 이번엔 과연 경륜과 전문성을 갖췄다는 세간의 평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한번 더 지켜보겠다는 심정들이다.

STX그룹에서 경영실패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LG에서 새로 둥지를 튼지 6개월만에 CEO에 선임되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처럼 관운이 좋을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시 한번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속설의 전형적인 케이스로 꼽히기도 한다.

전자공학과를 나온 이 회장은 이공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행정고시(12회)에 수석합격, 순조롭게 공직생활을 시작해 승승장구하면서 산업자원부차관에 오른 뒤 관을 떠났다가 장관으로 컴백했다.

생산성본부회장, 서울산업대 총장을 지내고 산자부장관에 발탁된 그는 퇴임 후 무역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임기가 끝나자 2009년 바로 STX그룹으로 영입됐다.

STX중공업과 STX건설을 관장하는 STX그룹의 에너지·중공업·건설부문 총괄 회장이란 중책을 맡았다. 당시 강덕수 그룹 회장이 오너였지만 장관 대학총장 경제단체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이 회장의 파워는 막강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드러난 실적으로 보면 결과물은 초라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이름값을 못했다는 얘기다. 2008년부터 해외에서 에너지 자원개발사업과 플랜트 사업을 추진해온 STX그룹은 경험과 전문성에다 자원부국과의 국제적 네트워크까지 갖췄다는 이 회장의 합류로 해외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강덕수 회장은 “이 회장이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STX의 역량을 한층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STX그룹은 중국 다롄중공업, 다롄조선에 1조5000억원을 쏟아붓는 등 대규모 해외투자했지만 세계적인 업황불황과 과잉투자로 그룹이 해체되고 강 회장도 퇴진해야만 했다.

강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샐러리맨의 신화’도 빛이 바랬다. 끝이 좋아야 만사가 좋은 법인데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그룹이 이런 비극적 결말을 맞기까지 이 회장이 어떤 역할과 결정을 했는지 별로 알려진 바 없다.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을 지녔다는 그가 위기상황에서 뒷짐만 지고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대주주인 강 회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일신상의 이유라며 사표를 냈다.

그리고는 한달도 지나지 않아 LG상사 고문으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위기의 STX에 몸담은 상태에서 LG측과 접촉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기업인의 윤리와 도덕성에 관한 문제다.

LG측은 “이회장은 경륜과 자원사업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분”이라며 이 회장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회사를 자원분야 선도기업으로 위상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CEO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 아닌가. 그렇다, STX그룹에 영입될 때 회사측이 이와 같은 말을 했었다.

LG상사는 최근 상황이 좋지 않다. 3분기 매출이 3조1661억으로 작년 동기에 비해 1500억원 이상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148억원으로 반토막났다. 당기순익은 32억원으로 10분의 1로 격감하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LG상사는 경영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최근 GS에너지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STX에너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이 회장만큼 도움이 될 사람을 찾기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경총회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2월까지 겸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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