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통계가 명목통계를 앞서는 기현상의 원인, 교역조건 악화

▲ 인천항.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연임한 이후 처음 발표된 국민소득 통계에서 사상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했다. 연임총재에게 적절한 덕담을 건넬 계기는 된다. 물론 소득 증가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긴 하다.

지금과 같이 저물가가 기조화된 상황에서 명목으로 집계하는 국민소득의 3만 달러 돌파는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다. 명목통계는 물가가 오를수록 부풀려지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지금 같은 세계적 저물가 추세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연간으로는 개천 이래 처음으로, 2만 달러 돌파 후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넘었지만, 한국은행의 5일 이런 발표에는 묵직한 사족들이 뒤따르고 있다. 행간도 아니고 한국은행이 첫 장에 요약한 내용부터 커다란 함정이 나타난다.

이번 통계가 대단히 특이한 점은, 지난해 4분기 GDP와 국민소득 통계 모두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통계숫자가 명목통계를 앞선다는 것이다.

4분기 명목GDP는 전기대비 0.5% 감소했으나 실질GDP는 1.0% 상승했다. 명목 국민총소득은 0.4% 감소했으나 실질총소득은 전기와 같았다.

물가상승까지 감안했더니 실적이 오히려 덜 악화됐거나 좋아졌다. 해당기간 물가가 후퇴했다는 의미다. 

이런 설명을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저물가시대라 해도 지난해 가을부터 물가가 후퇴했다는 얘기는 와 닿지 않는다.

이런 의문은 한국은행이 풀어주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물가는 국내 소비자물가와 무관한 대외교역조건의 물가인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4분기 한국의 주력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은 하락한 반면, 주요 수입품가격인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교역조건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교역조건의 악화가 실질과 명목통계숫자의 역전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사정이 이와 같다면, 올해 한국 경제는 연초부터 커다란 난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부진은 1995년 사상 처음 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직후 상황과 흡사하다. 당시의 한국 경제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무조건 1만 달러 소득통계를 고수하려다가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위기’를 초래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본지가 앞선 국민소득 관련 기사에서 밝혔듯, ‘소득 몇 만 달러’ 유지에 집착하지 않는 긴 안목의 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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